‘피해자 K 씨’의 이야기, ‘나’의 이야기

연극원 성추행 피해자 ‘개코원숭이’를 만나다

3월 14일 토요일, 학교 근처 카페에서 ‘개코원숭이’를 만났다. 그녀는 총무과에 항의하기 위해 하루 전의 약속을 미룬 후였다. 그녀는 크누아넷(학내 커뮤니티 사이트)에 ‘개코원숭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에게 처음 모습을 나타냈다. 그 이후로 학교 곳곳에는 그녀가 쓴 대자보가 붙었다. 교내 근로 중 교직원에게 성추행당했던 사건에 대한 내용이었다.

“저는 한국예술종합학교의 무기계약근로자 A에게 강제추행을 당했습니다. 저는 가해자 A가 일하는 부서의 근로 장학생으로 있었고, 가해자 A는 이전부터 제게 성적인 발언을 일삼았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근로해야 했기 때문에 가해자 A의 성적 발언에도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대자보 밖 그녀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이에 우리는 그녀를 만나 대자보에 담기지 않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문제가 생겨서 양성평등상담소에 갔을 때 어떤 절차로 상담이 이루어졌나.
사건 발생 바로 다음 날 심리상담소에 찾아갔다. 거기서 어제 저녁 성추행을 당했는데 몹시 혼란스럽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니 양성평등상담소로 연결을 해줬다. 거기 가서 어떤 것을 할 수 있는지 물어보자 상담소 측에서 비공식적인 방법, 공식적인 방법 두 가지를 얘기해 주었다.

비공식적인 방법은 양성평등상담소 중재로 가해자와 합의하는 것이고, 공식적인 방법은 학교에 서류상 신고를 하는 것이었다. 공식적인 방법을 통해서는 양성평등상담소가 속해 있는 상위 기관인 여성활동연구소 소장을 통해 총장에게 보고가 가고, 조사위원회가 구성된다. 또한,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조사를 받고 이를 토대로 징계위원회에서 징계 요청 통보를 받는다. 징계위원회는 총무과에서 구성하며 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징계가 내려진다.

사안을 외부로 송치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듣고 싶다.
2014년 8월 19일 화요일 교내 양성평등상담실에 사건을 공식적으로 신고한 것과 별개로 경찰에 신고했다. 이후 양성평등상담실에 경찰에 신고한 내용을 알리자 학교 측에서는 경찰 측과는 별개로 사건을 계속 진행할 것이라고 얘기해주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뒤 학교 측에서는 이 사건이 외부로 넘어갔기 때문에 규정상 외부의 결정에 따라 징계를 내려야 한다고 했다.

양성평등상담소에서 사안을 해결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피해자로서 겪었던 다른 문제들은 어떤 것이 있나.
세 가지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는 시스템의 문제다. 8월 19일에 공식적으로 신고했는데 소장 해외 출장으로 2주간 결재를 못 받았다. 대리인이 있었지만, 그 대리인이 결재 자격이 없어 나로서는 2주간 멈춰 있는 상태나 다름없었다. 그 부분을 총장에게도 건의했는데 관련 규정을 개정하고 있다는 답변을 어제(3월 13일) 받았다.

두 번째는 양성평등상담소의 직원이 한 명이라는 점이다. 양성평등상담소는 소장 한 명, 직원 한 명으로 구성되어있다. 어제도 총무과 과장과 사무과 과장, 연극원 학생회장, 등등과 얘기를 나누었는데 한 명의 인력이 한 학교에서 일어나는 수 많은 사건들을 감당하는 데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담당자에게 한 사람이 처리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사건을 다루고 있으므로 한 사건에 총력을 기울일 수 없어 미안하다는 말을 들었다.

세 번째 문제는 양성평등상담소는 조사위원회에서 조사한 것을 토대로 징계위원회에 징계 요청만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상담소는 징계위원회에 징계를 요청하는데 징계위원회가 열리는 부서(대상자가 학생이라면 학생과, 강사나 교수라면 교무과, 교직원이라면 총무과)와 양성평등상담소 사이의 소통이 잘 되지 않고 있다. 일례로, 총무과 징계 담당자에게 전화했을 때 1월 26일부로 징계를 받았다고 들었지만, 양성평등상담소 측에서는 모르고 있었다. 정황을 알기 위해 내가 직접 총무과에 전화해야 했다.

피해자 신분 보호에 대해서도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다. 12월 둘째 주 수요일 새벽에 익명으로 대자보를 붙였는데 금요일에 강제 철거되었다. 길을 가다가 우연히 양성평등상담소 직원과 다른 직원들이 같이 얘기하는 걸 흘려 들었는데 ‘대자보 갖고 지들끼리 싸우라 그래’ 따위의 발언이 있었다. 앞서 말했듯 양성평등상담실의 직원이 있는 가운데 다른 부서의 직원들이 대자보에 관해 얘기한다는 것이 과연 피해자의 신변보호가 되고 있는 부분인지 의문이 들었다. 또한,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양성평등상담실에서는 나의 수업 시간표를 고려하지 않고 일정을 잡아 수업 중에 조사를 받으러 나와야 했다. 나는 그때 강제추행을 당해서 조사를 받으러 가야 하므로 수업을 빠져야 한다고 교수님께 말하지 못했다. 가해자와의 공간 분리는 학교 측에서 애초부터 해줬어야 할 기본적인 피해자 보호이다.

위와 같은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학우들에게 따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
보통 성희롱에 관련된 사건은 불평등한 권력관계에서 기인한다. 내가 겪은 것도 일하는 사람과 일을 시키는 사람의 수직적인 관계에서 발생한 일이다. 크누아넷에 처음 글을 올렸을 때 나와 비슷하게 수직적인 권력 관계 속에서 부당한 일을 경험했지만, 불이익을 당할까봐 이를 공론화시키지 못하고 있는 학우들의 댓글을 보았다. 나와 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학생, 혹은 그렇지 않은 학생들에게 이것만은 꼭 말하고 싶다. 피해자가 잘못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발생한 것이 아니다. 피해자가 잘못을 저질러 피해를 입은 게 아니다. 성폭행 피해자들이 밤 늦게 돌아다녀서, 짧은 치마를 입어서 그런 일을 당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나는 부당한 폭력을 당했고, 이것이 부당하다고 외치고 있다. 사회가 나의 부당함을 알아주고, 피해자로서 정당한 권리를 보장받으며 스스로를 지키고 보호하고 싶다. 가해자가 어떤 처벌을 받더라도 만족하진 못할 것이다. 그러나 가해자와 똑같이 폭력을 쓰는 사람이 되기는 싫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는 지면을 통해 독자들에게 ‘나’ 그 자체가 아니라 ‘피해자 K 씨’로 받아들여지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내가 아닌 것은 아니다.

그녀는 자신이 불특정 다수에게 ‘피해자 A씨’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에 익숙해 보였다. 그리고 그 익숙함 속에는 익숙함을 넘어서 의연함이 보였다. 그녀는 자신이 피해자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그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다. 그녀가 보여주는 의연함은 당연해야 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당연하게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이상연 수습기자, 정리 서이다 기자)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2015. 3.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