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는 목적어가 필요하다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우리가 작년 이맘때쯤부터 수도 없이 보왔던 문장이다. 이에 대해서 우리는 잊지 않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거나 아니면 이 의지를 부정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러나 무엇을 기억할 것인지 말하는 사람을 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기억하겠다는 말은 목적어가 있을 때 비로소 제 의미를 다할 수 있다. 세월호가 침몰해 ‘세월’에 파묻히고 있다. 이 시점에서 기억해야 한다는 당위를 다시 쓰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기억할 것인지를, ‘어떻게’ 기억할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를 위해 세월호 참사를 ‘우연적’이지 않게 만든 원인들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후에 ‘필연적’으로 일어났던 행태들을 보고자 한다. 이것이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다.
첫 번째 목적어: 세월호 참사의 원인
먼저, 근본적인 원인을 언급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를 만든 것 중 하나는 제도의 부재였다. 박근혜 정부는 ‘규제는 암 덩어리’라는 슬로건 아래, 새로운 규제를 신설할 때는 기존의 규제를 폐지해 반드시 규제의 총량을 유지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해양수산부도 세월호 참사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선박안전관련 규제의 많은 부분을 폐지 및 완화했다. 이렇게 여객선 안전검재기준, 차량적재기준, 선박연령기준, 선박운행기준, 선박 내부 심사 및 보고의무 면제 등의 규제가 완화됐다. 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부를 거치며 해양 관련 부처의 해체와 부활이 반복되었다. 그로 인해 해양 구조 전문 인력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것 또한 원인으로 꼽힌다.
세월호 참사의 근본적인 원인뿐 아니라 사고 직후 구조 과정에서의 문제들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사건 발생 당시 해상교통관제센터(이하 VTS)가 재빠르게 대처하지 못한 데는 VTS의 관리 주체가 해양수산부와 해양경찰로 이원화되어 있는 탓이 컸다. 단원고 학생에게서 최초 신고가 들어온 시점, 해양 경찰은 진도VTS에 물어 바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는데도 신고 학생에게 경도와 위도같은 정보를 물어 1초가 아쉬운 시점에 4분이라는 시간을 허비했다. 그리고 해양경찰청이 구조 전문 인력이 없는 부대에 최초 현장지휘를 맡겨 제대로 된 구조를 할 수 없었다. 수중 구조 전문 인력들이 투입된 시점은 이미 세월호가 뱃머리 일부만 남기고 침몰한 뒤였다.
세월호의 선원들은 승객들을 탈출시키기 위한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았다. 심지어 승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지시한 후 자신들만 아는 통로로 먼저 탈출했다. 또한, 침몰 소식을 접한 청해진해운은 이 사건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 된 화물과적 사실을 감추려고 화물적재량 조작을 지시하기도 했다. 세월호 구조 과정에서 해양경찰이 세월호 선주인 청해진해운과 계약한 구난업체인 언딘에게만 구조 활동을 허용했다. 다른 자원봉사자들이 철저하게 배제된 사실도 승객들을 구조하는 것에 어려움을 더했다. 이는 수난구호법상 구조비용의 사후정산의 문제와 떼놓을 수 없다. 결국, 돈의 문제인 것이다.
두 번째 목적어: 미디어 속 재난
우리들은 세월호 참사라는 재난을 만들어낸 구조적인 원인뿐만 아니라 그것을 보도했던 미디어의 행태도 기억해야 한다. 많은 언론들이 서로 특종 경쟁을 하며 사실 관계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받아쓰기식 보도를 통해 끊임없이 오보를 양산했다. “학생 338명 전원 구조” 오보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미디어에서 일어난 ‘또 다른 재난’의 과정에서 희생자 유가족들과 시민들은 큰 혼란을 겪었다. 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이 사고 당시 촬영한 영상들을 유가족의 동의를 받지 않은 채 보도하는 등의 ‘보도를 위한 보도’는 유가족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었다.
이러한 보도가 이어진 배후에는 언론 보도를 통제하려는 정부 지침이 있었다. 참사가 일어난 지 하루가 지난 작년 4월 17일, 청와대는 각 부처에 세월호 관련 SNS 대응 지침을 하달했고, 각 부처와 공공기관 SNS를 통해 유언비어 및 악성댓글 자제 메시지를 전파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은 청와대가 길환영 전 KBS 사장을 통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해양경찰을 너무 비판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폭로한 바 있다. 또한, SBS 제작본부가 시사프로 <그것이 알고싶다>의 세월호 관련 특집을 제지한 사건에서 이를 단적으로 볼 수 있다.
세 번째 목적어: 기억하기 위한 노력, 특별법
지금까지 4월 16일 전후로 일어난 많은 문제들을 짚어보았다. 유가족과 시민들이 요구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은 이런 문제들을 기억하고자 했던 몸부림이었다. 특별법 제정 운동은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것을 넘어, 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하고 다시는 이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하자는 제도적인 차원의 행동이었다. 그러나 특별법 제정은 곧 정치적인 논쟁으로 변질되었다. 의사자 지정이나 대학 특례 입학과 같이 본질을 왜곡하는 프레임들이 특별법 위에 덧씌워졌다.
오랜 갈등을 거쳐 지난 해 11월, 국회는 4개월 간의 지난한 여야 논의와 협상을 거쳐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이하 「특별법」)이 제정됐다. 특별법은 여야의 합의를 거친 세 가지 취지를 가지고 만들어졌다. 첫 번째, “직접적·상시적인 수사권과 기소권은 없으나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 보장”할 것과 두 번째로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해 충분한 인력, 예산 및 시간 보장”할 것 마지막으로 4・16 참사의 가해자 측인 정부와 여당의 개입가능성을 최소화하고, 위원장을 가족 추천으로, 진상규명소위 위원장을 야당 지명으로 하고 다수의 민간 직원을 채용하여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공정성, 독립성 보장”하는 것이 그 내용이다.
그러나 지난 3월 27일 입법 예고된 「특별법」 시행령안은 「특별법」의 취지를 완전히 망가뜨렸다. 4·16 가족협의회는 이 시행령안이 “공무원들이 특조위를 장악하는 것으로 인해 결정·조직 지휘권이 사실상 무력화”되었다며 비판했다. 또한, △“진상규명 사업 내용을 정부조사 결과의 분석 및 조사 등으로 극단적 축소”했고 △“직원의 수를 법률에 비해 3/4으로 줄임으로써 업무 역량을 극단적으로 축소”했으며 △“공무원의 비율을 민간인과 1대1로 함으로써 특별조사위원회를 연구보고서 용역업체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특별법」 시행령은 유가족들 및 시민단체의 거센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지난 4월 15일, 유가족들은 시행령 폐기를 주장하며 박 대통령의 추모를 거절하기도 했다. 이날 이들은 진도에서 서울로 올라와 광화문에서 최루액을 맞았다.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세월호’는 아직도 침몰하고 있다. 우리는 이 질문에 딱 들어맞는 목적어를 찾아내지는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무엇을 기억할지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다르게 말하면, 그 목적어가 무엇이냐는 실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즉, 무엇을 기억할지 계속해서 질문한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끝나지 않는 이 질문이 앞으로 이어질, 이어져야 하는 모든 적극적인 행동의 동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너무 많은 것이 침몰했다. 우리가 질문을 멈출 때, 더 많은 것이 침몰할지도 모른다. (이상연 기자·서이다 기자)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4.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