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서 구린 음악이 나왔다
외대앞에 널려 있는 카페들 중에서는 어딘지 알고 가본 곳보다 있는 줄은 알지만 안 가봤거나 있는지도 미처 모르는 곳이 아직 더 많다. 오늘 어떤 카페에 처음 갔는데 그전까지는 그곳이 있는 줄도 몰랐다. 그곳은 의자가 편안하고 전기와 와이파이 신호가 끊임없이 공급되었으며 화장실에는 손 세척제가 놓여 있고 딸기주스도 맛있었는데 존나 구린 음악을 존나 너무 크게 튼다는 게 단 한 가지 문제였고 나는 거기서 나올 때까지 다른 모든 장점들 덕에 행복해하면서도 동시에 그 한 가지 단점 때문에 끊임없이 고난을 당하며 청각적 고통의 역치를 단련해야만 했다. 스피커에서 도저히 참고 들어줄 수 없는 정말 이런 노래가 음악의 역사에 존재하다니 인간들이여 멸종합시다 싶은 코리언 팝이 하염없이 흘러나왔는데 천만다행으로 제목을 아는 곡은 벚꽃 엔딩 뿐이었다. 나는 음료가 맛있고 랩탑을 충전하면서 인터넷을 쓸 수 있으며 쾌적한 화장실을 갖추고 있는, 그리고 좋은 음악을 아니 좋을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제발 존나 구린 음악을 크게 틀어놓지 않는 카페란 이 세상엔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또는 과연 여기 주인은 저런 끔찍한 걸 틀어놓는 게 매상 올리는 데에 정말로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음악적 존엄성을 포기하면서까지 단지 자리를 한참 동안이나 차지하고 있는 나 같은 손님들을 내심 내쫓고 싶은 것인가 또는 왜 좋은 음악을 틀어 놓는 카페는 하나같이 음료가 존나게 맛이 없는가 혹시 음악과 음료가 근원적으로 결코 양립할 수 없는 한 쌍인 것은 아닐까 증권회사에서 일하면서 밴드 하는 사람은 봤어도 바리스타 하면서 밴드 하는 사람은 못 봤는데 아무튼 카페에 일단 스피커를 설치한 순간 카페의 주인은 어떤 좋은 음악을 손님에게 들려줄 것인가 나아가 어떤 음악이 좋은 음악인가에 대한 고민을 놓지 말아야 할 의무가 있다고 나는 믿는 편이다 등의 생각을 하다가 그래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고 내일도 그 카페에서는 존나 생각지도 못한 구린 음악이 나올 것이고 내일 처음으로 그 카페를 방문한 또다른 누군가는 발을 들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와 똑같이 고통받을 것이라고 상상하며 거기서 애써 위안을 찾았다. 한 문장이 500자가 넘어가는 것은 내가 지금 만 자 짜리 과제를 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4.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