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꿀벌이라고 한다

어제는 지구의 날을 맞아 구글신께 내가 무슨 동물인지 여쭈었더니 꿀벌이라 그랬다. 천성적으로 부지런하게 일하며 꽃가루를 옮기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어라 나는 사람인데 종북은 아닙니다. 죽어라 일만 하면서 남의 번식이나 도와주는 운명이라니 정말 끔찍하다. 아니 사람이 소가 아닌데 어떻게 일만 하나? 그저께는 소고기를 먹었는데 사장님이 돼지껍데기를 서비스로 주셨다. 믹스커피도 마셨다. 그 전날에는 비가 계속 내리는 메트로폴리탄의 세기말적인 인간 군상들 사이에서 밤을 샜다. 카페에 있다가 너무 배가 고픈데 여덟 시나 되어야 빵을 판다고 해서 자리를 잡아 놓은 채 길 건너 편의점에 가서 라면과 삼각김밥을 먹고 오는 다분히 한국적이고 동시에 세계시민답지 못한 부끄러운 습속을 자행했다. 종북은 아닙니다. 잠시 후 아침에는 할매순대국밥에서 순대국밥을 먹으며 속으로 할매순대국밥이라니 단어 간의 호응이? 라는 의문을 던지며 할매순대국밥이라는 이름은 정말 끔찍한 상호라고 생각했고 가게에 설치된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아침드라마에 혀를 끌끌 찼는데 사실 재미있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믹스커피도 마셨다. 그리고선 잠깐 쪽잠을 자고 한 시 수업에 가려고 했는데 일어나 보니 이미 저녁이었기 때문에 절망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수업엘 나가야 하는데 수업에 나간 적보다 안 나간 적이 더 많고 그렇다고 그 시간에 노는 것도 아닌데 계속 괴로워하면서 자신이 어쩌자는 건지 잘 모르겠다. 학생은 수업을 들어야 한다. 나는 학생이다. 그러므로 나는 죽는다. 그 다음 날에는 밤을 새고 아침 수업 가기 전에 신문을 배부했다. 그리고 수업 두 개를 연달아 들은 뒤 밤 열 시쯤 일어났다. 소고기를 먹은 때가 이때다. 그리고 또 밤을 샜다. 그리고 수업을 또 들었다. 그리고 또 밤을 샜다. 내가 꿀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때가 이때다. 그리고 또 과제를 하다 말고 챔피언스리그 중계를 봤는데 아틀레티코가 탈락한 것은 슬펐지만 오랜만에 치차리토가 활약한 것은 정말 기뻤다. 물론 치차리토와 나는 일면식도 없지만 위닝일레븐에서 내 팀에 영입했다가 두 시즌만에 방출시킨 적이 있다. 지금 나는 과제를 완성했다고 생각했는데 방금 분량을 계산해보니 원고지 1.3장만큼이 모자란다. 이 글의 분량은 원고지 5.4장이다. (4.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