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 리뷰 1〉 세 번째: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
예전에 한 번 프랑크푸르트 영화박물관에 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는 주로 어린이나 청소년들을 교육하려는 목적으로 (초기) 영화의 역사가 연대기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만화경이나 조트로프, 프락시노스코프 같이 영화가 탄생하기 이전에 있었던 시각 문화들부터, 영화를 필름이 아니라 모션 픽처라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오히려 뤼미에르 형제나 에디슨보다도 앞선 시기에 있었던 샤를 에밀 레이노의 애니메이션 작업 등이 차례로 소개되고, 초기 영화 수십 편도 끊임없이 상영되고 있었다. 우리가 백여 년 동안 대체로 뤼미에르 형제가 남기고 간 전통에 따라 영화를 만들고 보고 비평해왔다는 점, 최초의 영화는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 L’Arrivée d’un Train en Gare de la Ciotat〉이라는 것이 상식처럼 알려져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불현듯 등장한 영화가 오늘날 그 확고한 형태로 세상에 자리잡기 이전에 가지고 있던 (어떻게 보면) 가능성들을, 이 박물관의 경우는 그래도 비교적 공들여 소개하고 있었다.
사실 영화의 기원을 여지껏 당연히 그렇게 여겨왔던 것처럼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로 상정하자면 그 문장에 가령 〈재즈 싱어〉를 최초의 유성영화로 놓을 때만큼이나 많은 주석을 달아야 한다. 〈재즈 싱어〉가 개봉하기 이전에도 ‘유성 영화’라고 일컬을 만한 영화들이 이미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재즈 싱어〉는 이미지와 사운드가 동기화되어 있고(1)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목적으로 상영되는(2) 영화라는 단서를 달 때에만 별다른 이견 없이 사실상 최초의 유성 영화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뤼미에르 형제가 만든 영화가 최초의 영화이기 위해서는 우선 영화라는 것을 프로젝터-관객-영사기의 순서로 배치되는 영사 방식을 갖고 있고(1) 집단적 관람이 가능하며(2) 상업적인(3) 것으로 한정지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에디슨의 키네토스코프가 뤼미에르보다 앞서 만들어진 진정한 최초의 영화로 기록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영화라는 것을 운동하는 이미지를 관찰할 수 있게 해주는 매체—모션 픽처라고 믿는 사람이라면 앞서 언급한 에밀 레이노의 애니메이션이야말로 시네마의 탄생이라고 충분히 주장할 수 있다.
나는 그러므로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를 영화의 탄생으로 보면 안 된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누구의 발명품이 진정한 의미로 영화의 탄생인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영화가 무엇이냐고 판단하느냐에 따라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백 년 정도가 지나는 동안 뤼미에르적 전통이 그야말로 오늘날 영화의 표준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전통은 영화가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부터 이미 가지고 있었던 잠재적인 형태의 가능성들을 억누르고, 자신이야말로 진정한 영화라고 주장하며, 그 전략이 지금까지 굉장히 성공이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몇 세기쯤 뒤의 사람들은 지금 우리가 전혀 영화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것을 영화라고 부를 수도 있고, 우리가 이것이야말로 영화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영화가 아니거나 영화의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는 거기에 관심이 간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를 다시 살펴 볼 수 있을 것이다.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들은 대개 ‘뤼미에르 영화들’로 묶인 채 설명된다.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이나 ‘역에 도착하는 기차’처럼 유명하지 않은 나머지 작품들은 사실상 이름이 없다. 있어도 모른다. 그런데 왜 ‘한 편의 영화’인가. 한 편의 영화가 진정한 의미에서 ‘한 편의 영화’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이름 없이 잊혀져 가는 영화의 이름을 불러주고 다시 살려내는 것이 비평하는 사람의 역할이다. 어떤 비디오가 ‘한 편의 영화’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이것을 ‘한 편의 영화’라고 불러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그렇게 부른다고 해서 그것이 이견 없이 ‘한 편의 영화’가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는 아마도 비평가일 것이다.
그러나 막상 뤼미에르 형제 자신들은 이것들을 과연 한 편의 영화라고 생각하고 만들었을지 궁금하다. 오늘날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듯이 ‘영화 찍듯’ 찍은 것은 아닐 것 같다. 영화라는 매체에 대해 별다른 고민을 하지는 않고 단순히 새로운 기술을 시험해보고자 하는 의도가 더 크지 않았을까. 마치 전화기에 처음으로 동영상 촬영 기능이 생겼을 때 사람들이 (멀쩡한 캠코더를 두고) 너도나도 그 기능을 시험해 보는 것처럼 그렇게 찍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러면서도 일단 카메라를 들고 거리에 나갔을 때 ‘무엇을, 어떻게 찍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실상 뤼미에르들의 고민은 딱 거기까지다. 거기서 더 나아가는 것은 백 년 후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거기에서 과거가 된 미래의 가능성, 상상된 역사을 발견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한 독해에도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으며 나는 그것을 폄훼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 단락에서는 뤼미에르 형제의 입장에서 이 영화를 보려고 하는 것이다.
이 영상은 뤼미에르 형제가 만든 영화들을 하나로 묶어 놓은 유튜브 게시물이다. 여기서 10분 39초부터 나오는 영화 〈걸음마를 떼는 아이〉를 보자(인터넷을 뒤져 보아도 제목을 찾기가 힘들어서 뤼미에르 형제들의 다른 영화에 제목이 붙는 방식들을 참조하여 내가 붙였다). 뤼미에르 형제의 다른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는 형식적으로 매우 단순하다. 여기에는 카메라를 어디에 어느 방향으로 놓을 것인가 하는 프레이밍framing의 판단과 언제 촬영을 시작하고 끝낼 것인가 하는 듀레이션duration에 대한 판단만이 있다. 여기서 프레이밍은 이를테면 회화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여기서 영화만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사실 듀레이션 뿐이다. 영화 문법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아직 발명되지 않았다. 영화는 자신이 찍고 있는 바로 그 아이처럼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했다.
뤼미에르 형제의 다른 영화들 중 군중이 등장하는 영화에서, 어떤 사람들은 카메라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데 또 어떤 사람들은 힐끗힐끗 카메라를 쳐다보기도 한다. 분명 얼마간 카메라를 의식하는 이 사람들은 자신이 ‘찍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정지된 이미지를 찍을 수 있고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최초의 실용적인 사진기가 이미 17세기에 개발되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사람들이 사진기와 유사하게 생긴 뤼미에르 형제의 시네마토그래프가 자신을 찍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도 가능할 법하다. 누군가가 카메라를 쳐다보는 순간 영화는 단지 투명하게 현실을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개입하게 된다. 여기서는 가장 무지한 인물만이 가장 ‘훌륭한 배우’다(그러나 훌륭하다는 표현이 가치 판단을 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다시 〈걸음마를 떼는 아이〉로 돌아오자. 단 한 개의 샷으로만 구성된 이 영화에서, 한 어린아이가 이제 막 걸음마를 떼고 있다. 그를 뒤따라오는 아이의 엄마(혹은 보모일지도 모르겠다)는 온통 아이에게만 관심이 있다. 조심스럽게 아이의 뒤를 따르며 혹시나 그가 넘어지지나 않는지에만 신경 쓴다. 그런데 아이는 초보적인 걸음으로 점점 카메라에 가까이 다가오며, 어린 아이만이 지을 수 있는 특유의 표정과 시선으로 언뜻언뜻 자꾸만 카메라를 살핀다. 카메라를 쳐다 보았다가 말았다가 하는 것. 그것은 듀레이션을 통해서만 드러난다. 그런데 이 아이는 카메라를 쳐다보는 것이 맞나? 그가 정말로 카메라 렌즈를 보는 것인지, 아니면 이상하게 생긴 기계를 작동시키고 있는 루이 뤼미에르 혹은 오귀스트 뤼미에르 혹은 둘 다를 관찰하는 것인지 나는 잘 판단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가 무엇을 쳐다보는 것인지가 사실 그렇게 중요한가? 어린 아이는 항상 경외의 눈을 갖고 세상을 바라본다. 그에게 모든 것이,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도 낯설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카메라에 찍히는 일이 그 아이에게는 별다른 일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온갖 신기하고 궁금한 것들 중 단지 하나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눈과 카메라의 렌즈를 비교하는 것은 영화에 대해 말할 것도 없이 중학교 생물시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낡은 비유지만 그만큼 수없이 반복되는 것은 일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그것을 뒤집을 생각은 없다. 사람이 눈으로 세상을 보듯이 영화는 일차적으로는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관찰하고 세상으로 나아간다. 카메라는 세상을 궁금해 하고 세상에 질문을 던진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수많은 공정과 문법이 덧붙거나 심지어 카메라의 자리가 없어지기도 하는 요즘의 영화와는 다르게 뤼미에르 형제의 시절에는 영상을 찍고 영사한다는 것을 실용화하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성취였다. 그렇기 때문에 뤼미에르 영화는 ‘카메라를 통해 본다’는 영화의 특성이 가장 잘 드러난 영화 중 하나일 것이다. 역사적인 평가를 최대한 배제하고 나면 이 영화에 대해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이제 막 세상을 보기 시작한 영화라고.
그러나 저 아이와 나중에 저 아이가 커서 만들어진 어른이 과연 같은 사람일까? 유년기의 나와 지금의 나가 동일한 인물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시간이 만들어낸 일종의 신화다. 그냥 둘을 두 시간에 각각 존재하는 다른 두 사람으로 보아도 아무런 논리적인 결함이 발생하지 않을 뿐더러 사람들은 정말로 자신의 먼 과거에 대해 생각할 때 어느 정도는 타자화시키기도 한다. 그러니까 저 영화가 이제 막 세상을 보기 시작했지만 바로 그 영화가 더 커서 오늘날의 영화가 된다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저 영화는 그냥 ‘이제 막 세상을 보기 시작한’ 영화로 존재하는 것이고 여기에 어떤 역사도 섣불리 보태어서는 안 된다.
이 영화들이 들어간, 앞서 얘기한 영화 박물관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그 박물관이라는 곳에서 영화사의 서막을 알린 초기 영화들은 (그곳이 박물관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당연하게도) ‘상영’된다기보다는 ‘전시’된다는 쪽에 더 가까웠다. 박물관은 그 안에 소장된 것들에 역사를 부여하는 제도다. 그곳에서 전시되는 영화는 영화 그 자체이기도 하면서 박물관의 동선과 맥락에 의해 통제 받는 사료이기도 했다. 그래서 박물관에 들어간 영화는 그렇지 않은 영화와는 달라진다. 혹은 영화가 들어간 박물관은 시네마테크와는 다르다.
박물관과 시네마테크는 일차적으로 아카이빙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각각이 영화를 보여주는 방식이 다를 뿐더러 그 영화를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양상 또한 좀 다르다. 말하자면, 박물관에 간 사람들은 관람객(심지어는 관광객일 때도 있다)이고 시네마테크에 간 사람들은 관객이다. 그러니까 사실 초기 영화를 박물관에서 구경할 수는 있어도 초기 영화의 관객이 되기란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실은 요즘 사람들에게 초기 영화는 영화의 역사 속에 매장되어 있는 자료 화면에 다름 아닌 것 같다.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는 나에게, 우리에게 무엇인가. 그들의 영화는 영화인가, 아니면 그냥 기념비적인 옛날 비디오인가?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를 영화라고 할 때 그것을 영화로 만드는 것은 1895년 12월 28일 그랑카페에 돈을 내고 그들의 영화를 보러 왔던 관객들의 존재일 것이다. 그때만 해도 관객이 영화를 비로소 영화로 만들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뤼미에르 형제의 작업은 단지 비디오 클립으로만 전해졌을지도 모른다. 이후 영화는 영화관이라는 모델을 통해 객석에 모여 앉아 무대 위를 지켜보는 연극의 전통을 효과적으로 전유했다. 영화관은 적어도 이후 백 년 동안 유지되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영화관에 영화를 보러 오는 관객들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언젠가부터는 관객보다 영화가(또는 영화관이) 먼저 있는 것 같다. 영화가(영화관이) 관객의 자리를 미리 만들어 놓는다. 가령 21세기 한국의 영화관은 멀티플렉스, 시네마테크, 예술영화관, 독립영화관 등으로 분화되어 있다. 각각의 영화관은 다른 종류의 관객을 기다린다.
그러나 이제 영화의 고향은 영화관 뿐만이 아니다. 영화관만 영화관인 것이 아니다. 박물관 또는 미술관도 영화관이다(‘국립현대미술관 영화관’이라는 고유명사를 한 번 떠올려 보라). 비행기도 영화관이다.노트북이나 전화기도 영화관이 될 수 있다. 이제 관객들은 ‘영화를 보기 위해서’ 영화관에 모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무질서하게 지나쳐가는 사람들을 어떤 한 순간 우연히 한 자리에 모여있는 것으로 포착할 수 있고, 마침 그들의 곁에 영화가 있었을 뿐이다.
초기 영화의 전통을, 아직까지는 표준적인 것으로 가장 널리 인정받는 집단적 경험의 뤼미에르적 전통과 기술의 발전으로 영화의 이동성이 확대되면서 다시 이야기되고 있는 개인적 경험의 에디슨적 전통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특히 이를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n-스크린 서비스라고 불리는 것이 얼마간 적극적으로 극장의 개념을 희석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을 사용할 때 우리는 극장이라는, 고정된 좌표에 위치한 그 공간에 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집에서 노트북으로 다운받아서, 지하철을 타고 가는 동안 스마트폰으로 스트리밍해서 보는 영화 또한 어쨌든 처음에는 극장에서 상영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단지 개인적 시청이라는 측면에서 그런 감상을 에디슨적 감상에 속해 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영화를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만드느냐’는 문제에서는, 아직까지 대다수의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뤼미에르적 관성을 이기지 못하는 듯 보인다. 아직까지는 뤼미에르적 전통이 극장을 지배한다.
그렇다면 시네마테크야말로 동시대에 상시로 경험할 수 있는 것들 중에서 뤼미에르적 전통을 가장 낭만적인 방식으로 간직하고 있는 공간일 것이다. 시네마테크가 ‘영화 박물관’과 다른 점은, 그곳에는 씨네필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씨네필에 관련해서도 그들을 시대별 유형별 분류를 언급하며 긴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여기서 그 내용은 생략하도록 하고, 씨네필이란 영화를 좋아하는(또는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명제만을 생각할 것이다.
씨네필들은 시네마테크에 간다. 나는 시네마테크에 왜 가는가? 나는 한국영상자료원이 너무 멀고, 지하철을 오래 탄 뒤에도 버스를 한 번 갈아타야 하기 때문에 잘 가지 않는다. 부산에 있을 때는 꽤 오랜 시간을 들여 영화의 전당 시네마테크에 몇 번 가서 영화를 봤다. 나는 작년 하반기부터는 낙원상가 옥상의(이제는 곧 서울극장으로 옮겨갈) 서울아트시네마에도 종종 찾아갔다. 가끔 아트시네마에 앉아서 무슨 고전 영화를 보고 있으면 정말로 시네마테크만의 비밀스런 기쁨의 순간이라고 불러야 할 것만 같은 감정이 문득 들 때가 있다. 그 감정의 정체는 무엇일까? 나는 낙원상가에서 앙리 랑글루아의 유령을 만나기라도 한 것일까?
그런데 그러한 감정을 느꼈었던 순간들을 돌이켜 보면 어떤 영화의 특정한 쇼트나 씬, 어떤 배우의 눈동자나 대사보다도 좌석 측면에 배치된 에어컨이 꺼지는 소리, 조용한 장면에서 쿵쿵 울리는 아랫층 무도회장의 진동, 스크린이 만들어내는 빛의 사각형 아랫부분을 조금씩 갉아먹는 앞에 앉은 이들의 윤곽선 같은 것들이 먼저 떠오른다. 이것들이 서울아트시네마의 본질적인 구성요소일까? 그렇다고 하기에는 영화 자체가 너무 중요하다. 그러나 적어도 이것들을 서울아트시네마에 대한 내 경험의 본질적인 구성요소라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나는 극장에 왜 가는가? 나는 영화를 집에서 혼자 다운로드해서도 잘 보고 극장에 가서도 잘 본다. 극장에 가면 영화를 보다 큰 화면과 좋은 음향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좋다. 여기서 큰 화면으로 영화를 볼 수 있어서 좋다는 것은, 단지 화면이 크다는 사실 그 자체가 좋다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영화가 극장 상영을 염두에 두고 제작되기 때문에 극장 스크린에서 보는 것이 더 적절한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인물들의 작은 동작 같은 것들이 작은 화면으로는 포착하기가 힘들 때가 있다. 아무튼 그런 기술적인 측면들을 빼면 별로 극장에 갈 이유는 없다. 적어도 나는 팝콘을 먹으러 극장에 가거나 누구와 함께 극장에서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서 영화를 보러 가는 사람은 아니다.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면 돈이 꽤 많이 필요하다. 표를 사야 하고, 차비가 든다. 팝콘 같은 걸 전혀 사지 않는다 하더라도 어쩌면 두 끼 식사를 개넌하게 해결할 수도 있는 돈이다. 또 나가려면 옷을 갖춰 입어야 하고 날씨도 살펴야 한다. 표를 예매할 때는 적당한 자리를 찾아내야 한다. 수많은 사람들과 그들의 무뇌한 대화와 공중화장실의 기다림과 팝콘과 버터구이 오징어 냄새를 견뎌야 한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극장의 구성요소 중 가장 본질적인 것일지 모른다.
한편으로, 나에게는 비행기를 타고 가며 보는 영화가 왠지는 모르겠지만 하나의 독특하고 다른 것과 비교하기 까다로운 영화 경험으로 남아있다. 아마도 비행기를 타고 타국으로 떠난다는 특수한 상황과, 해외 항공사를 탄 경우 한글 자막이 없는 불편함 등이 그 경험을 독특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비행기가 성실하게 대기를 가르는 동안 승객이란 사람들은 딱히 할 일이 없고, 비좁은 좌석에서는 잠자기도 쉽지 않다. 웬만해서는 인터넷도 하지 못한다. 십수 시간이 걸리는 무료한 여정을 달래주기 위해 커다란 항공사들은 좌석마다 스크린을 부착해놓고 각종 영상을 볼 수 있게 해 놓는다. 고전 영화부터 최신 영화까지 많지는 않지만 꽤나 다양한 콜렉션이 준비되어 있다. 모든 영화를 그 안에 넣어두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거기에 들어갈 몇몇 영화들을 ‘고른다(프로그램한다)’는 점에서 조금 비약자하면 비행기를 대륙을 가로지르는 하나의 시네마테크, 더 정확하게는 시네마테크와 유튜브 사이에 있는 어떤 날아다니는 영화관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비행기에 앉아서 영화를 보고 있으면 특히 Sci-fi 영화를 보고 있으면 마치 외계인이 되어 이 행성 지표면에서 가장 지배적인 종의 문화를 관찰하거나 미래에서 온 사람이 되어 지난 인류의 역사와 문화가 보존되어 있는 기록 영상을 감상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비행기에서 본 영화보다도 비행기에서 영화를 보았다는 경험 그 자체가 더 기억에 남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영화를 사랑한 것일까, 비행기를 사랑한 것일까?
나는 스스로를 씨네필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온 사람은 아니다. 영화에 대해 별다른 생각이 없거나 또는 영화는 단지 전공일 뿐이라고 생각해 온 기간이 훨씬 길다. 예전보다는 영화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지만 아무튼 지금도 스스로가 씨네필인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다. 이 불확실함의 대부분은 ‘나는 씨네필이냐’는 질문이 단지 ‘나는 영화를 사랑하는가’라는 기본적인 질문보다도 ‘나는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영화를 보았는가’ ‘나는 서울아트시네마에 자주 가는가’ ‘나는 전주국제영화제에 간 일이 있는가’ 따위의 질문과 연결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영화를 꽤나 좋아하지만, 아핏차퐁의 영화를 보지도 않았고 서울아트시네마에 그렇게 자주 가지도 않고 전주국제영화제에는커녕 전주에도 한 번도 안 가 봤다. 이상하게도 이곳에서 나는 씨네필이라고 주장하고(사실 그래야 할 필요도 없다) 영화에 대한 나의 사랑을 증명하려면 그런 부차적인 증거들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일단은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한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정기적으로 어떤 감독이나 주제에 관한 기획전을 열곤 했는데 이를테면 〈라울 월쉬〉전이나 〈마누엘 올리베이라〉전 같은 것들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감독들의 이름과 그들의 명성을 수 차례 들어 보았을 것이고 어쩌면 이미 그들의 작품을 여러 번 감상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시네마테크에 와서 익숙한 그 영화들을 다시 한 번 감상하면서 특히 그것이 과거에 만들어진 영화일 경우 과거의 향수 비스무리한 것에 젖고 그럴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시네마테크에서 트는 영화는 항상 낯선 것이었다. 더욱이 나에게는 어떤 영화를 보러 가야지 하고 마음 먹을 때나 어떤 영화를 보기로 했을 때 미리 그 영화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지 않는 습관이 있다. 귀찮아서이기도 하고 일부러 그러기도 하는데 이 습관을 간직하고 있는 까닭은 어떤 정보도 없이 영화를 볼 때에 그 영화를 가장 평등하게 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 영화만 놓고 보면 최대한 거기에 관한 많은 지식과 정보를 갖춘 채로 보는 것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그러자면 다른 영화와 비교할 때 일정하게 짜여진 틀을 벗어나기가 힘들다. 말하자면, 시네마테크에 갈 때마다 나는 항상 낯선 영화들을 보았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뤼미에르 영화야말로 항상 낯선 영화였다. 뤼미에르 형제의 첫 영화를 보았던 사람들은 그랑카페에서 그때에 있었던 것들 중에서 가장 낯선 것들 중 하나를 보았다. 오늘 그 ‘영화’를 찾아서 보아도 가장 먼저 낯설다는 생각부터 든다. 그러니까 뤼미에르 영화에 대해 한 마디로 말하자면 그것은 낯설다. 그러나 그때는 영화 자체가 워낙 낯선 것이었기 때문에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가 낯설었던 것이고 오늘은 영화가 워낙 익숙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낯선 것이다. 둘 다 낯설다는 것은 같지만 그때의 낯섦과 지금의 낯섦의 결이 같지 않다.
그런데 오늘날 누군가가 단순히 뤼미에르 영화와 똑 닮은 영상을 찍어서 유튜브 같은 곳에 업로드하면 별다른 주석을 달지 않는 한 아마도 그것은 홈 비디오로 분류될 것이다. 홈 비디오와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들은 무엇이 다른가. 다른 것이 있다면 오늘날 홈 비디오는 뤼미에르 영화와는 다른 방식으로 ‘상영’된다는 것이다. 뤼미에르 형제가 만들어낸 상영의 개념은 ‘어느 날 어느 시각에 어떤 영화를 어디에서 상영하겠다’고 극장이 공지하면 이 영화를 보기 원하는 사람들이 그 시각과 공간에 맞춰 나타나 돈을 내고 영화를 보는 방식이다. 시간과 공간에 매여 있는 상영이다. 그러나 홈 비디오는 원래는 상영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었다. 캠코더 시대에 홈 비디오란 말그대로 집에서 찍어서 가족들과 친구들끼리 보는 것이 그 전적인 목적이자 용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터넷의 시대를 맞아 홈 비디오는 이제 훨씬 더 재빠른 방식으로 소비된다. 실질적으로 그것들은 랜선을 타고 동시다발적으로 ‘상영’된다. 각각의 상영에서 관객은 개인이거나 혹은 몇몇 사람들에 불과하지만 그들이 모여 거대한 관객 집단을 구성한다. 단지 그들이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에 있지 않았을 뿐이다.
그렇다면 홈 비디오는 영화가 아닌가? 오늘날 홈 비디오는 유튜브에 넘쳐난다. 이제 매분 300시간 분량의 동영상이 유튜브에 업로드된다. 세상이 영화가 될지는 잘 모르겠으나 적어도 세상은 이미 비디오가 되고도 한참 남았다. 또는 비디오(유튜브) 그 자체가 하나 이상의 세상이 되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뤼미에르 영화를 유튜브에서 보았다는 것이다. 얼마 전 ‘태어나서 처음으로 비를 맞는 아이’의 비디오가 유튜브에서 인기 동영상이 되었다. 이 아이는 케이든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태어난 지 15개월만에 처음으로 비를 맞으면서 그 새로운 감각에 놀라워한다. 그런데 이 홈 비디오에 배경음악과 소리가 들어가고, 이것이 디지털 컬러 촬영으로 만들어졌다는 점만 빼면 뤼미에르 형제의 〈걸음마를 떼는 아이〉와 별로 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 뤼미에르 영화와는 달리 이 영상은 낯설지가 않다. 그렇다면 과연 뤼미에르 영화를 낯설게 하는 진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홈 비디오와 다른 점이 소리가 있느냐 없느냐, 디지털 컬러냐 흑백 필름이냐의 차이이므로 그 기술적 질감의 차이가 낯섦을 불러일으킨다고 유추할 수 있다. 그런데 보다 중요한 것은, 이 기술적 차이는 필연적으로 영화사적 특수성을 소환하고 그렇게 되는 순간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는 그냥 그것이 유튜브에 지금 그렇게 있듯이 다른 영상과 평등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사라는 동앗줄을 타고 ‘태초의 영화’라는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전당에 들어가는 것인지 갇혀버리는 확실치가 않다. 더군다나 그 동앗줄이 썩은 동앗줄일 수도 있다.
나는 이 글에서 뤼미에르 형제가 남긴 영화들을 최대한 영화사적 맥락에서는 떨어뜨려 놓은 채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극장이라는 공간을 실질적으로 뤼미에르적 전통이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려고 했다. ‘영화의 기원’으로서 뤼미에르 영화가 갖는 의미는 실은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뤼미에르의 영화에 대해 영화의 기원이 아닌 다른 이야기들을 더 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뤼미에르 영화가 수수밭에 떨어져 산산조각나지 않게 하려면, 그래서 거기에 대해 또다른 말을 하고 그럼으로써 다시금 생명력을 부여하려면 우리는 뤼미에르 영화를 좀더 다른 영화들과 평등한 맥락에서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