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느 날 문래동 문래레코드에 가서 단편선과 선원들의 음악을 들었다. 가는 길이 추웠지만 문래역에서 내려 문래를 [물래]로 발음하는 게 맞는 건지 고민하면서 걷다보니 금방 도착했다. 스태프에게 커피 한 잔을 건네받았다. 공연이 시작하기 전에 에일리의 "보여줄게", 스틸하트의 "She's Gone", 머라이어 캐리의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 조관우의 "늪", 유승준의 "열정" 같은 노래를 틀었고, 곧 단편선과 선원들이 나타났다. 단편선은 늘 그렇듯 맨발에, 씹던 껌을 미처 뱉지 못한 채 나왔다. 피코테라가 단편선에게 껌 뱉을 휴지를 가져다주며 '매니저 하기 싫다'고 중얼거렸다. 단편선은 자신을 유승준이라고 소개했다.
단편선과 선원들은 자신들의 첫 번째 앨범 «동물»을 처음부터 끝까지 연주했다. 이 앨범은 잘 만든 앨범이다. 확실히 그렇다. 이번 공연을 보고 "노란방"이 앨범의 두 번째 트랙이라는 것을 비로소 기억하게 되었다. "노란방"의 가사는 프랙탈 이미지 비스무리한 것을 상상하게 한다. 어디서 듣길 의도적으로 비논리적인 가사를 썼다고 하는데, 성공적이다. 사실 특정한 부분의 가사는 뭐라는 건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 성공적이다. 공기는 따뜻했고 공연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뭐라 말 못할 감동을 느끼고 있었을 테고 앞에서 노래하고 연주하는 이들은 지쳐갔다. 나는 행복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만 원으로 했던 일 중에서 손에 꼽을 만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단편선이 사실 자신은 유승준이 아니라 단편선이라는 것을 실토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러나 누구도 그 작은 기만에 드러내놓고 불만을 표하지는 않았다. 다들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체 했다. 단편선은 말을 잘 한다. 공연이 끝나면 멤버들과 함께 마늘 치킨을 먹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지하철을 타고 돌아왔다. 한강은 깜깜했고 나는 좀 외로웠다. 내 옆에 선 누군가는 전화로 다른 누군가와 바삐 다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