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는 각개전투이다

인간관계 각개전투

사람과 사람 사이는 각자 헤쳐나가는 것이다, 라고 누군가 여기에 써놓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에서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하는 관계 맺기에 대한 짧은 선언. 기실 인생에 대한 강렬한 일반론이다. 어쩌면 각자라는 것보다 전투라는 것이 더욱 고통스럽지 않나라는 생각을 한다.

평범한 2층 주택을 식당으로 개조한 이 장소의 담벼락은 좀 투박한 데가 있었으나 꽤 멋스러웠다. 어쨌거나 담벼락이라는 건 나와 남을 구별짓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고, 이 담벼락 또한 충실히 맡은 바를 다하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담벼락의 임무에 훼방 아닌 훼방을 놓은 것이다. 저 글귀를 써놓은 사람이 이 거리에 사는 사람인지 나는 모른다. 그가 어떤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떤 (아마도 고통스런) 일을 겪은 뒤에야 이 깨달음에 도달했는지도 나는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은 누군가가 저 흔한 공공의 표면을 개인적인 메시지의 영역으로 바꾸어 놓았고, 지금 그 누군가는 거기에 없다만 그가 칠한 글자들은 아직 선명히 남아 자신이 알지 못하던 사람들과 관계 맺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관계라는 게 너무나 얄팍한 것이다. 언젠가 이 길을 걷던 행인은 매체 아닌 것이 매체 되어 어떤 사람의 그때까지의 인생의 처절한 결론이자 도시에서의 삶의 증명이 거기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겠지만, 곧 스쳐 지나갈 뿐이다. 우리가 담벼락에 무슨 짓을 해도 그것이 우리를 각개전투식 인간관계에서 자유롭게 해주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가상 공간에 수많은 담벼락을 소유하고 있지만 여전히 사는 건 팍팍하다. 어쨌거나 담벼락이라는 건 나와 남을 구별짓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