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으로 갔다

 분당의 첫 번째 인상

21세기 초반 한국의 지하철은 틀림 없고 정시를 지키며 무인으로 운행되기도 한다. 나는 밤을 샌 뒤 신분당선 열차를 타고 내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에 친구들을 만나러 갔다. 민간으로 운행되는 열차가 나를 착실히 운반했다. 

십수년 전에 새로 만들어진 도시는 다소 희한한 곳이었다. 친구 ㅇ을 먼저 만나서 여기저기를 걸어다녔다. 나는 길거리에서 부유하고 마음에 여유랄 게 전혀 없는 사람들 특유의 초조한 표정들을 목격할 때마다 구토 하고 싶었다. ㅇ가 자신의 초등학교 시절 얘기를 해줌으로써 그것을 부추겼다. 나는 이곳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지 않은 것을 좀 다행으로 여겼다. 우리는 사막에 왔다.

분당의 610번째 또는 611번째 인상

우리는 곧 ㄴ과 합류했다. 우리는 프랜차이즈는 아닌 곳에서 식사하고 프랜차이즈에서 커피 마시고 수다를 떨었는데 이 모든 일이 지극히 정상적인 것으로 느껴졌다. 나는 스스로를 표준화하는 자본주의적 공간 속에 임의적으로 앉아서 이 도시에도 로컬리티라는 게 존재한다면 모든 로컬리티의 전면적인 삭제가 바로 그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그밖에 품위 없는 소리를 많이 했지만 언젠가는 할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