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되어서야 밖에 나왔는데 달이 어쩐지 이상하게 생겼더니 사람들은 그걸 개기월식이라고 부르는 모양이었다. 지구 그림자가 달 표면에 둥글게 비치는 걸 보고, 정말 지구가 존재하긴 하는구나 싶어 안도했다. 그러면서도 그 그림자가 지구 존재의 몇 안 되는 증명이었던 시절의 사람들은 얼마나 불안했을까하는 생각이 들어 조금 슬펐다. 나와 마찬가지로 그들 또한 물었을 것이다: 내가 밟고 있는 이 땅이 존재하긴 하는 걸까. 나는 정말 존재하긴 하는 걸까. 보고 듣기, 맛보기, 행복, 슬픔, 느긋함, 여유로움, 우울함, 엿 같음 모두 화학적이거나 전기적인 특수한 자극들의 예측 가능한 조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과연 개인의 특수한 정체성은 어디서 보장받아야 하는 걸까. 기실 인간은 거울이나 카메라에 비친 허상을 통하지 않고서는 스스로의 모습을 결코 관찰할 수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인간 개체가 자신의 존재에 확신을 갖고 살아간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10월 8일에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