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는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인가?
블로그가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의 한 종류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둘을 구분해볼 생각을 별로 생각해본 일이 없었는데 고민할 수록 둘은 완전 다른 게 아닌가라고 생각되었다. 누가 이 글을 읽고 아, 블로그는 SNS가 아니었구나라고 깨달음 비스무리한 걸 얻어갈 가능성은 별로 없겠지만 이번 기회에 글로 정리해둔다.
블로그는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가 아니다. 블로그blog라는 단어는 웹-로그web-log의 줄임인데, 문자 그대로 웹web에 기록log하는 공간이라는 뜻이다.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라 불리는 서비스들이 등장하기 이전부터 블로그는 존재했다. 블로그는 정보의 제공이나 토의를 목적으로 월드 와이드 웹www에 발행된다. 그것은 별개의 엔트리(포스트)들로 구성되며, 엔트리들은 날짜 순서의 역순으로 표시된다(가장 최신의 엔트리가 가장 위/앞에 보인다).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는 실재 세계의 인간 관계나 공통된 관심사, 취미, 출신 등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가상 세계에서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즉, 사람들이 실제 세상에서 미처 행동에 옮기지 못한 것들—관심있는 이성의 글에 쓸데 없이 좋아요를 누름으로써 호감을 드러낸다거나, 각종 음모론을 자신의 타임라인에 게시한다든지 하는 식으로—웹 상에서 편리하게 시간을 낭비할 수 있도록 돕는 서비스이다. 블로그와는 애초에 만들어진 목적이 다르다. (대부분) 웹 상에서 구현된다는 점을 제외하면 블로그와는 별로 공통점이랄 게 없다.
오늘날의 블로그
초기(대체로 2009년 이전까지)의 블로그들은 대체로 한 개인이 하나의 주제를 다루었지다. 대표적인 블로그로 맥 사용자 사이에서는 유명한 Back to the Mac이 있다.
그보다 최근에 와서는 MABs(multi-author blogs)라는 것이 등장했다. 한국말로는 이 용어를 뭐라고 옮겨야 할지 모르겠는데, 보다 한국적인 영어로 표현하면 '팀 블로그' 정도가 되겠다. 여러 명의 필자가 글을 쓰고, 보다 전문적인 편집이 이루어진다. 신문이나 여타 미디어, 대학, 씽크탱크, 시민단체 등등의 기관에서 비롯된 팀 블로그들이 전체 블로그 트래픽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점점 커지는 추세다. News Peppermint가 소규모 팀 블로그의 전형을 보여준다.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의 시스템을 이용해 팀 블로그들과 개인 블로그를 통합해 어떤 사회적인 뉴스스트림을 제공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가령 허핑턴 포스트는 여러 블로거-칼럼니스트들의 글을 모아서 보여주는 하나의 블로그이자 지금은 미국의 언론사 웹사이트 중 최고 수준의 트래픽을 기록하는 인터넷 신문이다.
허핑턴 포스트를 일컬어 '시민 참여형 저널리즘'이니 어쩌니 하는 환상에 섣불리 열광할 필요는 없겠지만, 어쨌든 블로그가 오늘날 저널리즘의 한 하위 장르로 기능하고 있다는 것은 참이다.
그렇다면 왜 어떤 사람들은 블로그가 SNS의 일종이라 생각할까?
포털의 늪
적어도 한국 사람에 한정해서, 그들이 착각에 빠진 건 포털의 탓이 크다. 가령 전국민이 아이디를 하나 이상 갖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네이버는 회원가입과 동시에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 없이 한 개의 블로그가 생성된다. 거기 관심을 갖지 않는 이상 그게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블로그가 생성이 되느냐 아니냐의 차이는 크다. 하나의 아이디로 메일, 쪽지, 카페, 클라우드 등등 수십 개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포털의 특성상, 가입을 하는 순간 생기는 블로그의 진입장벽은 사용자에게 결코 높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블로그가 쉽게 느껴지고—물론 쉽게 느껴진다는 건 특장점일 수도 있지만—결과적으로 누구든지 네이버 아이디만 있다면 가상의 공간에 자신의 똥들을 차곡차곡 축적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경험상, 자기가 싼 똥이 가상 세계에 존재하는 어떤 고정된 공간에 근사하게 쌓여가는 걸 보면 꽤나 뿌듯하다. 시간 순서의 역순으로 정렬되어 최근에 싼 똥이 맨 위에 자리한다. 쓰고 보니 재래식 변소의 원리와 상당히 유사하여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된다(아래에 있는 오래된 똥들을 풀과 함께 썩히면 퇴비로도 사용할 수 있다. 유익해라!).
아무튼, 내가 처음 블로그라는 매체를 접한 것도 중학생 때 네이버에서였다. 돌이켜보면 그땐 블로그가 정확히 뭘 위한 매체인지도 몰랐고, 이미 시들해져가던 드림위버 등의 개인 홈페이지 서비스보다 좀 더 세련된 것이라는 정도로만 생각했다. 단지 개인적인 공간이 웹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일종의 아늑함, 그 느낌적인 느낌이 사춘기적 감성을 자극했었던 것 같다. 물론 관리는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이후에도 나는 네이버, 워드프레스, 텍스트큐브, 블로거 등을 전전하며 대여섯 개의 블로그를 야심차게 시작했다가 폐기하기를 반복했던 것이다.
굳이 전문 블로깅 솔루션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다른 블로깅 서비스들은 블로그를 개설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정성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예컨대 티스토리는 다른 블로거의 초대장이 있어야 가입할 수 있고, 구글의 블로거(이 블로그의 서비스 제공자이기도 하다)는 구글 아이디가 있다 하더라도 블로그 생성을 위해서는 별도의 간편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블로깅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의 투자가 요구되는 것이다. (회원가입만 하면 별도의 절차 없이 자동으로 생성되는 포털의 블로그 서비스에 비해 사용자들이 성공적인 블로그 생활을 해나갈 가능성도 높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더군다나 네이버 블로그가 국내 최대의 검색엔진 네이버의 블로그 검색 결과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것이다. 네이버는 한국에서 가장 인기 많은 검색엔진이지만 동시에 가장 폐쇄적인 검색엔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네이버에서 정보를 검색하는데 결과에 표시되는 게 죄다 네이버 블로그이니 그들이 네이버 블로그가 블로그의 표준처럼 인식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네이버 블로그는 네이버 아이디만 만들면 만들 생각이 없었어도 만들어져버리니 블로그가 아주 간편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수준도 그리 높지 않다. 맛집 블로그가 맛집보다 많은 것 같다. 정말 그렇게 맛집이 많은 게 사실이라면 나는 이때까지 우연히 맛집의 나라 한국에서는 아주 보기 드물게 음식이 맛이 없는 식당만 잘 찾아다녔나보다.
블로그를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대해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먹으라고 나온 음식 사진만 찍으며 맞춤법도 안 맞는 한국어로 쓰나 마나한 단어 몇 개 써제끼라고 블로그라는 매체가 만들어진 게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기본적으로 블로그는 '글'을 쓰는 공간인 것이다. 나조차도 블로그가 어떤 건지 대충 감을 잡은 건 나이를 좀 더 먹고 난 뒤 대학교에 와서 조금이나마 제대로 된 글을 읽고 쓰는 법을 배우면서였다. 그리고는 다른 블로거들이 어떤 글을 어떻게 쓰는지를 면밀히 관찰하였다. 즉, 내가 이전에 개설하여 말아먹은 것들이 제대로 된 블로깅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처음에 포털에 의해 변형된 형태의 블로그를 받아들임으로써 형성된 잘못된 인식에서 벗어나는 데 몇 년이 걸렸다. 그리고 아직도 뒤틀린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아주 많은 것 같다.
끝내며
블로그를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의 일종으로 생각하는 것이 삶에 별다른 지장을 초래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알아서 손해볼 건 없지 않은가. 자신이 블로거라면 블로그라는 매체가 어떤 것인지 더욱 잘 알아야 할 것이다. 블로그는 삶을 기록하는 공간이고, 그 기록들이 차곡차곡 쌓여 훌륭한 개인의 역사가 된다. 즉, 열심히 블로깅 해서 나쁠 것이 없다!
(*덧붙여, 이 글은 결코 맛집 블로거들을 비난하는 목적에서 작성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밝힌다. 훌륭한 음식을 먹고 거기에 대해 훌륭한 글을 쓰는 훌륭한 맛집 블로그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되도 않은 맛집 추천은 여러 사람의 행복을 저해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