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정말 왜 이렇게 사는 걸까?

강준만, «우린 왜 이렇게 사는 걸까?», 인물과사상사, 2014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68892

강준만이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건 위의 글을 읽으면서였다. 한 학자의 사상사를 날카롭게 비평하는 이 글의 내용이 지금도 완전히 정리는 안 되지만서도 아무튼 세상은 넓고 똑똑한 사람들은 정말 많다고 느꼈다. 그의 글이 읽어보고 싶어 최근에 나온 책이 인터넷 서점에서 할인중이길래 냉큼 샀다. 그게 {우리는 왜 이렇게 사는 걸까?}다. 여행에서 돌아와 집에서 할 일 없이 빈둥대다가 책이라도 읽어야지 싶어 집어들었는데 나의 목적에 상당히 부합했다! 시간 때우기 좋고 적당히 머리가 채워지는 느낌이 든다.

이 책에서 강준만은 보통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떠올릴 만한 궁금증들을 각각에 들어맞는 (유사) 이론들로 설명한다. 가령 '왜 장관들은 물러날 때쯤에서야 업무를 파악하게 되는가?'라는 질문에 암묵지 개념으로, '왜 우리는 정당을 증오하면서도 사랑하는 걸까?'라는 질문에는 스톡홀름 신드롬으로 대답하는 식이다. 그는 머리말에서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에 대해 '확신'보다는 '지식'에 근거한 소통을 시도해보자는 뜻"에서 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몇몇 개념들은 실로 유익하며, 전혀 몰랐던 사실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그러나 책 전체를 관통하는 어떤 문제의식이라고 할 만한 것은 별로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아직 '전기' 강준만의 글들을 읽어본 바도 없고, 위의 글 또한 "철저히 소모된 지식인"으로서의 강준만을 분명히 지적하고는 있지만, 글쎄 의문이 드는 건 막을 수 없었다. 강준만이 누구인가. 그는 (이렇게 설명하기엔 지나치게 피상적인 느낌이 크지만) 두 명의 대통령을 만들어낸 '킹 메이커'이자 {인물과 사상}지를 통해 소위 논객시대를 열어제낀 장본인이 아닌가. 그러나 이 책에서 글로 세상을 바꾸던 학자의 모습을 찾아내는 것은 힘들었다. 아마도 내가 전기 강준만을 잘 모르기 때문인 탓이 크지 않나 싶다. 아무튼 책의 마지막 단락은 다음과 같이 끝난다.

(...) 좌우, 여야, 지역, 계층, 세대 등의 분열과 갈등 구도, 그리고 프랙털 원리에 의해 그 구도 안에 자리 잡은 또 다른 분열과 갈등 구도를 넘어서 우리 모두 화합과 평등을 지향하는, 한 단계 발전한 세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말이다. (324)

저 문장은 언뜻 마치 선거철 거리에 나온 정치인이 외쳐대는 의미없는 연설처럼 읽힌다. 분열과 갈등 구도를 넘어서, 화합과 평등을 지향하는, 한 단계 발전한 세상이라니. 너무나 당연하고 동시에 뜬구름 잡는 듯한 소리이다. 하지만 강준만식 '뜬구름 잡기'가 정치인들의 그것과 동일한 것이라고 섣불리 판단하기는 망설여지는 것이, 첫째로, 만약 그러하다면 그것은 몹시 안타까운 일일 것이기 때문이고, 둘째로 (그의 앞선 행적과 맥락을 조금 안다면) 저 뜬구름 잡는 문장에서 정말로 나은 세상을 바라는 강준만의 소망이 느껴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한때 지성계에 폭탄을 터뜨렸던 학자에 대한 기대에 비해 일견 실망스럽지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노정태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이미 "철저히 소모된" 지식인이며, "글을 통해 세상을 바꾼 몇 안 되는 지식인"이지만 "세상은 결코 그가 원하던 방향을 향하지도, 선호했던 방법을 택하지도 않았다." 이 책은 후기 강준만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텍스트인 셈이다. (발견하기 어렵긴 하지만) 글로 세상을 바꿨던 학자는 아직 거기에 있다. 다만 그는 몹시 지친 듯 하다.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언론과 논객들이 판치는 요즘 순수하다 싶을 정도로 솔직한 그의 바람이 얼마나 힘을 발휘할지에 대한 의문과는 별개로, '확신'이 아닌 '지식'에 근거한 소통을 설파하는 강준만의 태도를 반박할 여지는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왜 이렇게 사는지를 진짜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더 이상 그렇게 살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강준만의 바람대로 한 단계 발전한 세상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세상이 온다면 그것은 어떤 영웅적인 논객이나 정치인 몇몇이 만들어낸 변화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함께 일군 결과물일 것이다. 선택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하지만 바로 그 점에서, 더 나은 세상이 쉽게 오지는 않을 것 같다. 더욱이 한때는 글로 세상에 많은 변화를 일으켰던 어떤 지성인이 온갖 풍파를 겪은 뒤 도달한 결론이 그것이라면, 회의감은 더 짙어진다. 우린 정말, 왜 이렇게 사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