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을 여행했다

강릉행 무궁화호를 타면 태백에 갈 수 있다. 아침 일찍 출발하면 해 지기 전에 도착한다. 

숙소에 짐을 풀고 좀 쉬다 밤이 되어 태백산에 올랐다. 야간등반이라 해도 길이 잘 나있고 (항상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함께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여럿 있어 장비만 잘 갖추고 발밑만 잘 보면 그리 위험하지 않다. 눈 덮인 밤의 태백산은 생명의 기척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보이는 것이 별로 없다. 전등에서 나오는 빛이 밝혀주는 십수 미터의 시야와 앞서가는 사람들의 반짝임에 의지해야 한다. 

일행에서 떨어져 걸어도 눈을 밟는 소리가 사브작 사브작 여전히 시끄럽다. 그러다 걸음을 멈추고 전등을 끄면, 잠시 동안이나마 칠흙 같은 어둠으로 벽을 지은 나만의 공간이 생기는 것이다.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끝없는 고요함은 놀랍게도 텅 빈 사운드가 아니라 적막이 귓가를 가득 채우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동시에 다가오는 공포와 아름다움. 고개들 들었을 때 수많은 별들이 웅크리고 있지 않았더라면 나는 겁에 질리고 말았을 것이다. 

부전역에서 무궁화호를 탔다.
날이 밝아온다.

빛과 그림자

주름진 강원도의 땅.

무기력한 겨울의 태양

눈 쌓인 걸 보니 왠지 <지슬>이 생각나서 흑백으로 만들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