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과 밤이 아직 함께 있었다
오늘은 반바지를 입고 긴 양말을 신었다. 날이 무척 따뜻했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가장 더운 날인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도 나다니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이제 일곱 시가 지나도 하늘이 어두워지지 않는다. 저녁인데도 걸으니 땀이 조금 났다. 2002년 월드컵 때 축구 국가대표팀 조리실장인지 조리대장인지로 있었던 사람이 운영한다는 식당에 가서 설렁탕을 먹었다. 가게에 붙어있는 액자들을 보니 허투루 지어낸 경력은 아닌 듯 했다. 김치가 맛있었다. 식사를 하고 나서 믹스커피를 한 잔 마셨다. 건널목 앞 잡화상점에서는 배호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제목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문득 요맘때는 낮과 밤이 서로를 좀더 오래 붙잡고 있는 걸 볼 수 있는 행운의 계절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아직 해가 다 지지 않아서 하늘은 충분히 밝지만 인간들은 시계를 보고선 조명을 켠다. 그래서 다른 계절과는 빛이 다르다. 이 풍경은 내 존재와는 상관 없이 반복되어왔겠지만 나는 그걸 오늘 처음으로 발견했다. 기분이 좋아서 걸으면서 끊임없이 노래를 불렀다.
해가 지기 전에는 몇몇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 몇몇 지나간 일들과 몇몇 앞으로 다가올 업무에 대해 의논했다. 나는 새 프린터를 써보고 싶어서 괜스레 자료를 인쇄했지만 아무도 내 속셈을 눈치채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자료는 순식간에 인쇄되었다. 그만큼 편안한 자리는 오래간만이었다.
밤이 오길 기다렸다가 봉골레 스파게티를 만들었다. 바지락과 백합을 가지고 만들었다. 좋은 음악을 들으며 먹었다. 자고 일어나면 아마 봉골레 스파게티를 또 만들 것이다. 시간은 저녁에서 낮으로 갔다가 다시 밤으로 흐른다. 하지만 이제는 기대한 것만큼 밤이 길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