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캉의 대학담론과 자본주의에 대한 논문을 요약해 보았다

김용수의 논문 라캉의 대학담론과 자본주의: 세미나 17을 중심으로를 발제했다. 새벽에 일어나서 급히 하느라 중간에 장 하나를 생략해야 했다. 요약 발제를 싫어하지만 시간이 부족해 결과적으로 요약 발제가 되었다. 그렇다고 새롭게 할 여력은 없다.


자크 라캉은 네 가지 담론—주인담론, 히스테리담론, 대학담론, 분석가담론—이론을 통해 “사회를 구성하는 담론 구조와 그 변동을 정신분석적인 관점에서 설명”하려 했다. 김용수는 “우리 학계는 네 가지 담론 이론에 대해 무관심”해왔다며 그간의 아쉬움을 토로한다. 이 무관심은 부분적으로는 라캉이 네 가지 담론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한 『세미나 17: 정신분석의 이면 Seminar XVII: The Other Side of Psychoanalysis』의 영역본이 2007년에서야 출판된 데서 기인한다. 『세미나 17』은 “68혁명의 여파가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던 1969년 11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라캉이 ‘정신분석의 이면’이라는 주제로 행한 강의를 정리한 것이다. 이중에서도 대학담론은 “정신분석 이론과 자본주의 분석을 이어줄 수 있는 중요한 연결고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눈에 띈다. 다시 말해, 루이 알튀세르 이후의 마르크시즘 이론과 정신분석 이론 사이의 “커다란 간극을 메워줄 수 있는 의미심장한 텍스트”가 바로 『세미나 17』인 것이다(알튀세르 자신도 라캉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김용수는 『세미나 17』을 중심으로 라캉의 대학담론에 대한 논의를 이어나간다.


주인담론
S1S2행위자타자
$a진실생산/상실


라캉의 네 가지 담론 중 기본형은 주인담론이다. “주인담론을 구성하는 네 용어가 순서를 바꾸지 않은 채 시계방향으로 한 번씩 자리 이동할 때마다 새로운 담론 구조, 즉 히스테리담론, 분석가담론, 대학담론 등이 차례로 만들어진다.”

“라캉에게 기표는 주체를 다른 기표에게 재현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주인기표(S1)가 주체($)를 다른 기표들(S2)에게 재현해준다.” 그러나 기표가 주체를 재현할 때 기표의 속성 때문에 필연적으로 실재가 상실되고, “잉여의 대상(a)을 지울 수 없는 부산물로 창출한다.” “그 결과 주체는 기표의 재현과 잃어버린 대상 사이에서 분열한다($). 이렇게 하여 기표들의 효과로서 무의식이 탄생하고, 실재 대상에 대한 욕망도 출현한다. 주인 담론에는 또한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주체의 탄생 과정이 담겨있다고도 볼 수 있다. 주체는 기표들의 연쇄(S1 → S2) 속으로 봉합되어 상징적 주체로 탄생하지만 완전한 봉합의 실패로 인해 희열jouissance이라는 잉여 찌꺼기(a)가 생산된다.”

주인담론은 “주인과 노예의 관계에 기초하고 있다.” 주인기표의 자리에 선 주인(S1)은 “행위자라는 우월한 위치에서 다른 기표들로 표상되는 타자로서의 노예(S2)를 지배하게 된다(S1 → S2).” 노예들은 “기표들의 집합, 즉 지식(S2)”을 지니는데 이것을 라캉은 노하우know-how, 즉 생산 기술과 관련하여 축적된 지식이라고 부른다. 주인(S1)은 자신의 분열된 주체($)를 지니고 있는데, 이것(진실)을 “막대 아래로 숨긴 채(S1 / $) 결핍 없는 완벽함을 가장한다.” 주인의 진실, 분열된 주체($)는 주인 담론이 만들어낸 대상 소타자(a)와 “어떤 관계도 맺지 못한다($    a).” 이 대상이 바로 잉여 희열 surplus jouissance이며, 이것은 마르크스의 잉여가치 surplus value 개념과 맞닿아 있다.


대학담론
S2a행위자타자
S1$진실생산/상실


주인담론의 용어들을 시계 방향으로 세 번 움직이면 대학담론이 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종속적인 타자의 자리에 있던 지식(S2)이 행위자의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한다”는 점이다.”

일차적으로 대학담론은 학문, 교육에 관한 담론 구조로 이해할 수 있다. 노예의 ‘노하우’는 대학담론에caption 지식 체계는 그 진실로서 여전히 주인기표를 가질 수밖에 없다(S2 / S1). 기표들의 모임은 주인기표의 개입을 통해서만 정합성을 띤 일관된 체계로 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식들은 “객관적 합리성을 가장하지만 사실 그 근저에는 특정한 주관성, 즉 초월적 발화자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담론에서 지식의 진실은 주인이다.” 지식은 “피교육자를 체제 안으로 흡수하기 위해 그를 교육의 대상으로 삼는다(S2 → a).” “하지만 교육은 완전히 성공하지 못하고 언제나 체제 내로 흡수되지 않는 무엇, 즉 분열된 주체를 낳는다(a / $).” “지식의 진실인 주인은 결국 주체의 이질성에 접근하지 못한다(S1    $).”

객관성, 합리성을 가장하는 지식은 관료주의나 근대 민주주의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본주의야말로 대학담론의 작동을 잘 보여주는 체제라 할 만 하다.” 라캉은 노예의 ‘노하우’가 주인의 지식으로 변환되는 과정을 “자본주의적 차취”라고 일컫는다. “대학담론의 출현은 또한  잉여가치(a)의 전면적인 부상을 의미한다.” 주인담론에서 대학담론으로 변화하는 과정이 잉여가치의 등장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잉여가치는 바로 자본주의의 핵심적인 특징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생산은 … 본질적으로 잉여가치의 생산”이라고 단언한다.” 잉여가치의 축적은 곧 자본의 축적을 의미하고, “그것은 대학담론에서 지식이 축적되는 장소(S2)에서 이루어진다.”

한편, “잉여가치의 창출과 축적을 위한 자본주의적 생산과 소비의 순환은 아무런 문제 없이 완벽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자본의 입장에서 ‘쓸모 없는’ 부산물을 필연적으로 만들어냄으로써 일정한 실패를 노정한다. 이는 근본적으로 잉여가치의 차구치에 그 원인이 있다.” “노동자는 잉여가치로부터 소외”되기 때문이다(a / $).” “다시 말해 노동자는 자본주의적 생산 과정과 그에 대한 불만 사이에서 분열된 주체($)이다.” “노동자의 사회적 불만은 체제 안으로 일부 흡수되기도 하지만 사회적 증상symptom의 형태로 표출되기도 한다. … 대학담론에서 사회적 증상은 치유되지 않는다.”

(4장 ‘자본주의와 잉여희열’은 생략한다. 하지만 사실 이 부분이 재미있는 부분이다.)

논문의 결론부에서 김용수는 “요즈음 우리 대학들은 급격히 자본화되고 있다”며, 그에 대한 대안을 라캉의 네 가지 담론 중 언급되지 않았던 히스테리담론이나 특히 분석가담론에서 찾으려고 시도한다. “히스테리담론은 변화의 시작이다.” “하지만 히스테리담론은 주인의 권위에 호소하는 담론이기도 하다. 주체는 자신의 진실인 잉여희열에 대해 확실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잉여희열은 불안의 대상이 되고, 주체는 불안을 근본적으로 해소해줄 수 있는 더욱 강력한 권위를 갈망하게 된다($ → S1).” “히스테리 주체가 원하는 것은 제대로 된 주인, 주인다운 주인이다. 히스테리적 회의는 따라서 주인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새로운 권위의 도래로 이어질 수 있다. 대학담론이나 자본주의에 대한 불만도 또다른 주인담론으로 회기할 가능성을 언제나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히스테리담론은 대안 모색의 시작일 뿐 그 자체가 대안일 수는 없다.”


히스테리담론(좌측)과 분석가담론(우측)
$S1a$
aS2S2S1


“히스테리담론의 네 용어들이 시계 방향으로 한 번씩 위치 이동하면 분석가담론이 나타난다.” 대상 소타자(a)는 여기서 처음으로 행위자가 되고, “분석가는 실재의 위치에서 주체와 관계를 맺는다(a → $).” “분석가는 진실에 열려있는 지식을 구성하고(a  /  S2), 이를 통해 주체가 환상을 뚫고 욕망의 원인과 대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a → $).” “분석가 담론의 부산물인 주인기표는 진실로서의 지식과 어떤 관계도 맺지 못한다(S2    S1). 지식과 주인기표 사이에는 장벽이 존재한다.” “분석가담론에 기초한 대학은 실재가 주체에게 드러나고 지식은 실재의 진실에 닿아있는 곳일 터이다. 분석가담론은 대학이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울 것을 요구한다. 대학은 오직 진실에 대한 열정만이 지배하는 학문 공동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