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요즘을 정리해 봄

도대체 언제부터 언제까지를 요즘이라고 불러야 할 지의 문제는 ‘언제 한 번’과 더불어 한국어에 존재하는 난해한 시간 표현의 대표적인 예라고 생각하지만, 아무튼 그 언제부터 언제까지를 언제 한 번 정리해두어야겠다고 생각한지 꽤 되었으므로 정리해 보기로 한다. 두서는 여기 온 적 없으니 딴 데 가서 찾아라.

요즘만큼 죽겠다는 소리를 자주 한 적이 일찍이 없다. 요즘만큼 여러 가지 일로 바빴던 때가 없었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갖가지 일을 벌려 놓고 죽어라 고생했다. 처음으로 가진 것(물건은 아니고) 팔아 돈도 벌었지만 입금이 아직 안 됐다. 그러나 요즘만큼 무언가 혹은 누군가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 적이 없고, 또 요즘만큼 스스로 느끼기에 주체적이고 자기완결적으로 살아낸 시절도 없다. 한 발 내딛을 때마다 우당탕거리긴 해도 혼자 이것 저것 하면서 언젠가 이민 갈 날을 꿈꾸며 잘 살아가고 있는 듯 하다. 요즘 나는 작년의 나보다 한 살 많다.

그러나 요즘 들어서야 나는 내 삶이 어쩔 수 없이 편협하고 모자라다는 걸 깨달았다. 그 점에서 친구 ㅈ에게 감사한다. 앞으로도 어쩔 수 없이 그럴 거라는 건 아마 다다음 요즘 쯤 되면 깨달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여전히 나는 어떤 사람들의 어떤 취향(이라고 그들이 부르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존중하기 싫지만 근데 그것이 그들을 존중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라는 것은 바로 얼마 전에 알았다. 요즘 나는 어떤 종류의 문화적 실천에 관한 어떤 사람들의 심리적 생태를 탐구하는 것을 장차 내 일로 삼을 수도 있겠다고 종종 생각하곤 한다.

또 나는 우울이 주기적으로 찾아온다는 것을 요즘에는 알고, 그것을 좀 반길 수 있게 되었다. 세어보진 않았다. 대략 한 달에서 한 달 반 정도 걸리는 것 같다.

내가 열심히 하는 일 중에서 조금이나마 생산성이라는 특성을 부여할 만한 것은 글쓰기인데(실은 그것도 과분하다고 느낀다) 요즘만큼 글을 자주, 많이 쓴 적이 없다. 대부분 쓰잘데기 없지만 그래도 많이 써보는 건 좋은 일이라 여긴다.

한편으로 글쓰기에 관해서, 요즘 시간이 갈수록 나는 착하디 착한 글 안 좋아한다는 게 확실해지고 있다. 그렇다고 착함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착한 글, 희망적인 글은 싫다. 과거를 반성하며 희망적인 미래를 비추는 글을 늘상 써대는 사람들은 안 그랬으면 한다. (원래 그런 사람들도 싫었지만 요즘 나는 사람에 대한 싫음은 웬만해서는 참기로 했다.) 유구한 인류의 역사에서 여태껏 그런 사람들이 쓴 그런 글에 담긴 희망의 총량을 계산하면 길고 길었던 문맹의 시대를 감안하더라도 지상 낙원이 도래하기에 모자람이 없었을 것이다. 나는 낙원상가에도 몇 번 가봤는데 낙원 없었다. 그러니까 늘 희망적이거나, 그런 글만 쓰거나, 그러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정말이지 자기들 눈 앞과 그 너머에 있는 것을 자기들 마음과 떼어 놓고 바라보는 데 최소한의 노력을 기울였으면 한다. 나는 비관론자는 아니며, 눈 먼 희망이 싫다.

무엇보다 요즘 나는 가령 ‘소중한 순간들이다’ 같은 문장이 머릿속에 떠올라도 그런 쓰나 마나 한 문장으로 글을 끝마치지는 않아야겠다고 고쳐 생각한다. 요즘 쓸 데 없는 일에 관심이 많아서 당신이 요즘 들어 읽은 글 가운데 요즘이 가장 많이 들어간 글을 써보려고 의식적으로 요즘 엄청 요즘 많이 쓰려고 요즘 노력했는데 지금까지 스물두 번 밖에 안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