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의 마지막 날에도 분주히 커피를 마셨다

거의 다 한 아파트 단지에 모여 사는 중학교 때 친구들 부모님과 함께 하는 가부장적 중산층 연말 식사 자리에 땀을 뻘뻘 흘리며 앉아 있다가 친구랑 나는 먼저 인사드리고 나왔다. 얼마 전에 동네에 스타벅스가 생겼으니 한 번 가보자고 해서 따라갔는데 마치 읍내에 마실 나가는 할아버지가 된 기분이었다. 스타벅스를 안 가본 것도 아니고 요즘 프랜차이즈가 얼마나 많은데 똑같은 커피숍 하나 생긴 것 가지고 그렇게 호들갑이냐 할 수도 있지마는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외대앞에 맥도날드 처음 생겼을 때도 나 포함 많은 사람들이 어린 아이처럼 좋아하면서 꼭 한 번씩 들리자고 했었고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던지 줄을 한참 서서 기다려야 했다. 스타벅스 알바들은 연말에도 변함없이 초록색 의상을 두른 채 노동하고 있었다.

역시 스타벅스 커피맛은 서울이나 부산이나 똑같았고 나는 거기에 별로 놀라지 않았다. 어느 도시에 가도 비슷한 풍경이 펼쳐질 때 사람들은 무궁한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 거기에 걱정 비슷한 불편한 감정을 느끼기도 했었는데 그렇다고 무조건적으로 로컬리티를 지상 가치로 삼고 그것을 지켜내기 위해 모든 표준화 작업들을 거부하는 것은 이미 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우리 것을 지켜야 산다'는 신토불이 운동과 뭐가 다른가 싶다. 로컬리티라는 게 아주 소중한 자산인 것 같지만 기실 요즘 때때로 로컬리티가 강조될 때 그것은 관광이라는 근대적 소비 행위를 끌어들이기 위한 지역의 자기서사 구축의 결과물 이상은 아닌 것 같다. 알고 보면 한 시대에 속하는 사람들은 어딜 가나 비슷비슷한 모습으로 살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로컬리티라는 것이 명확한 실체를 띠는 것인지 잘 모르겠고, 설령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같은 지역이라도 몇십 년 단위로 살펴보면 완전히 다른 생활 양식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게 그렇게 오래 가는 것은 아니다.

대규모 자본이 서울을 점령한 뒤 몇몇 거점을 기반으로 지역을 침식했거나 하고 있는데 이게 엄연히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앞에서 본 것처럼 이걸 로컬리티의 문제와는 엄격히 분리한 채 계급적 문제의 틀로만 생각하는 것 또한 어려운 듯 싶다. 그러니까 로컬리티 신화를 바탕에 두고 일련의 현상들을 '(우리) 지역의 소중한 로컬리티를 살려야 하는데 대기업들이 그걸 파괴하려 한다'는 식의 단선적인 내러티브로 환원하는 것은 분명히 좀 해체되어야 하는 게 맞는데, 그 뒤에 그걸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가 문제다.

굉장히 빨대를 꽂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뚜껑을 제거하면 그렇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