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한 것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 이걸 강조하기 위해 똑같은 말을 두세 번 정도 반복해서 써도 좋을 것이다. 계획한 것은 절대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계획은 항상 어느 만큼은 빗나간다. 그렇게 생각하면, ‘생각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좌절감을 주는 것’을 계획이란 단어의 정의로 채택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주변을 보면 믿을 수 없을 만큼 계획을 세우지 않고 생활하는 사람도 있고, 모든 일을 계획하고 일이 그대로 풀리지 않을 때 죽을 만큼 고통스러워 하는 사람도 있다. 계획—미래를 먼저 한 번 헤아려 보는 일이야말로 인류가 지금의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던 이유다. 어차피 우리는 미래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다가오는 미래의 공포에 계획이라는 임시방편으로 대처하는 것이 최선이다. 모든 것이 계획에 들어맞지는 않았거나, 어떤 예상치 못한 변수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고 해도 별 상관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일이 계획한 대로 안 굴러가도 언제나 어느 정도는 괜찮다. 원래 그런 거니까.
<LIFE PLAN 101>에서는 현재 한국에 살고 있는 인터뷰이들에게 화이트보드에 꿈을 그려 보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부분 딱히 무너가를 그리지 못하고 헤맨다. 그러면 현실적인 계획을 그려 보라고 한다. 그제서야 계획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웰시 코기를 키운다든가, 자동차를 산다든가, 애들은 무조건 학원엘 보내야지, 집을 사는 일은 자살 행위와 다름 없죠, 어쨌든 목표는 헬조선을 탈출하는 거예요. 중요한 것은, 이 계획들이 세워지는 단계에서부터 벌써 실패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노후를 위해 자식을 학원에 밀어 넣어야 하고, 차를 살 돈 같은 건 없을 거란 걸 깨닫고, 그래도 어쩌면 반려견 한 마리 정도는 지탱하며 살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꿈은 그려 볼 수조차 없고, 계획은 세우는 동시에 포기한다. 이들이 모두 제1세계 출신이라는 점은 별로 상관이 없어 보인다. 이 사람들이 무리한 희망 사항을 그려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꿈과 현실로 표현하라고 하면, 이 상황은 악몽쯤 될 것이다.
왜냐하면 여긴, 실은 아직도 21세기가 오기를 기다리는 2016년의 한국이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이든 이미 여긴 미래를 상상하기가 쉽지 않은 곳이 되어 버린 지 오래 됐다. 너무 당연한 것을 바라기에도 벅찬 이곳에서, 우린 (최신의 유행을 따라) 나라를 탓하든 (다소 구식이긴 하지만) 스스로를 탓하든 간에 책임을 돌릴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내야만 한다.
하지만 이건 그냥 5분 짜리 유튜브 클립이다. 대개는 그냥 심심풀이로 보는. 게다가 우린 이 영상에 등장하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격려를 건네거나 따끔한 충고—이건 이대로도 너무 끔찍하다—조차 할 수 없다. 그런다고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어떤 누구도 이 사람들에게 ‘왜 벌써부터 포기하느냐’는 식으로 말할 수 없다. 물론 그렇게 하는 사람이 아직 많다는 게 이 세상의 수많은 문제 중 하나지만. 세상에는 아직도 ‘내가 인마 다 너 잘 되라고’ 운운하며 예의라는 걸 전혀 모르는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많다. 하여간 이걸 보는 사람이 그나마 안전하게 할 수 있는 건 웃긴 장면에서 몇 번 웃는 것뿐이다.
여기서 무력감을 딛고 일어나려면 이런 질문부터 던져야 할 것이다: 여기서, 꿈과 현실 사이에, 계획의 자리는 어디에 있나? 어쩌면 그건 아무 데도 없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이 영상 안에서는 그렇다. 꿈은 이미 산산조각났고, 현실은 너무 가혹하다. 그 사이에는 도무지 계획이 설 자리가 없어 보인다.
다만 우리가 본 건 개론(101)이니까,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어쩌면 몇 개의 강의가 우리를 또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강의가 잃어버린 계획의 자리를 찾아내는 일에 관한 것이었으면 좋겠다. 아무런 계획 없는 무방비 상태로 어쨌든 오기는 할 미래를 맞긴 싫으니까. 그 계획이 좀 엇나갈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괜찮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