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다가 조금 전에는 기숙사에서 연락이 와서 휴학생은 기숙사에 입주해 있을 수 없다며 주말까지 방을 빼라고 했다. 관련 규정을 알고는 있었지만 행정적인 연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고 맘대로 단정한 채 안심하고 있었는데, 허를 찔렸다. 당장 짐은 어디에 두고 잠은 어디에서 자야 하는가. 이번 주 들어 세네 번째로 제발 문제들이 한 번에 하나씩 벌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는 일을 롤플레잉 게임처럼 생각하면 편리할 때가 있는데 되려 퀘스트가 멋대로 불어나서 도저히 플레이할 마음이 안 들게 만드는 못 만든 게임이 되고 말았다. 가장 나쁜 점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이다.
그래도 아직까지 나에게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들에는 납득할 만한 근거가 있고, 그것은 퍽 다행이다. 최근에 겪었던 다른 일(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인해, 이 일이 내가 펴내고 있는 신문에 대한 것이라는 것 이상으로 이것을 자세히 묘사하기는 힘들다)은 정말이지 내 좁은 삶의 범위에서도 가장 비상식적이고 비논리적이며 반지성적인 것이었고, 나에게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혔다. 우리는 비상식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나는 다른 모든 것들을 포기하더라도, 사람(어른)이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만큼은 손가락 한 마디도 양보할 생각이 없다. 그러나 이번 상대는 안타깝게도 이 전제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우리의 대화는 실패(실패라는 단어로는 모자라다고 생각한다)로 끝났다.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어떻게 해결하기는 했지만, 이 어려운 주제는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있다; 우리는 비상식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대부분의 분야에 관해 나는 스스로를 상식적인 사람이라고 자신있게 표현할 수 있다. 자신이 상식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큰 불행이야말로 그의 삶에 비상식적인 것이 나타날 때다. 안타깝게도 세상에는 비상식적인 사람들이 당당하게 숨 붙이고 살아가고 있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그런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여기에 대한 나의 입장은 (아직까지는) 이런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그치지 않고 그들의 삶에 아주 작은 영향이라도 끼치기 위해 노력하자는 쪽이다. 그리고 그것은 무척 힘이 드는 일이다.
신문으로 범위를 좁혀 문장을 다시 써 보면, 무엇보다도 우리는 우리의 독자 집단 안에 비상식적인 인간들이 섞여 있다는 점을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그리고 그 숫자는 우리가 어림잡던 것보다 많을지도 모른다). 우리 신문이야 드물게도 상업성이라는 단어와는 아무런 인연도 없지만, 돈에 관해 걱정해야 하는 매체라면 이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또는,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돈에 관해 걱정해야 하는 매체들이 왜 그런 비상식적인 일들을 하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쟁점이 될지도 모른다. 하여간 내가 알기로 그간 우리 신문은 특성상 독자층에 관한 고민을 그렇게 심각하게 해오진 않았는데, 발행부수 자체가 많지 않을뿐만 아니라 우리가 신문을 어떻게 만들어도 보는 사람들은 대충 정해져 있고 거기서 영향 받을 만한 일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일을 계기로 일부 독자들의 비상식에 대해 고민하지 않아도 될 만한 이유 또한 없다는 점이 새롭게 강조됐다. 왜냐하면 우리 신문은 몇몇 다른 매체처럼 기획하는 단계에서부터 독자들의 특성을 고려해 목표 대상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 구성원이라는, 아주 명쾌하면서도 동시에 너무나 불명확한 독자 집단을 위해 만들어지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신문에 실리는 기사를 쓰는 방식, 알맞은 표기법, 지면 편집에 쓰이는 단의 개수, 인터넷 신문을 운영하는 방침을 포함해 모든 것을 갈아치우더라도 바뀌지 않을 한 가지는 우리 신문이 학교 신문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나 학교 구성원, 그중에서도 특히 학생들을 위한 신문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비상식적인 학생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스스로 상식적이며 나아가 문제의식을 띠고 있다고 생각하는 나는 언제나 조국 문명화를 위해 애쓰고 있다(말장난이긴 하지만 진심이다). 그를 위해 첫 번째로 언제나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며, 두 번째로 예의를 갖추기 위해 힘쓴다. 학교 신문이라는 것에도 마찬가지로 같은 의무가 부과될 것이다. 어떤 사람이 비상식적이라고 해서 그가 사람이 아닌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상식적인 사람의 삶이 그렇지 못한 사람의 삶보다 양적으로 더 가치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예의를 갖춰야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또한 그들의 삶에 당장 감지되지는 않는 아주 작은 변화라도 만들어내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하며,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 동시에 그것이 남의 삶에 간섭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잘 정리된 이론적 규범이라기보다는, 이런 신문을 만들겠다는 자신의 도덕적 선언 정도라고 해석하면 좋을 것이다.
애초에 이런 글을 쓰기 위해 메모 앱을 연 것은 아니었는데, 이제 이런 식의 글밖에는 쓰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