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념이 많아서


여행이 끝나고 서울에서 주로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며 날을 보내자니 온갖 잡념이 몰려와 살기가 힘들다. 며칠 전부터는 입 안이 지끈거리며 아팠는데 거울로 안쪽을 살펴보니 사랑니가 올라오는 것 같다. 도대체 사랑니는 왜 나는가? 내가 찾은 치과의사가 단지 돈 때문에 사랑니를 뽑아야 한다고 권할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수술을 하다가 얼굴 신경이 눌려서 앞으로 죽을 때까지 아랫입술에 불편한 감각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등의 일어나지 않으리라 어떻게 장담하는가? 따위의 걱정이 가시질 않는다. 사랑니뿐만 아니라 나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 너무 많다.

이제 짧은 글을 쓰는 것조차 힘들다. 나는 아직 눈앞에 도착하지 않은 일들을 무엇부터 해야 할지, 문장을 어떤 순서로 배치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소하면서도 중대한 문제들이 나와 함께 있다. 가령, 종일 누워 있었기 때문에 앉거나 서거나 걸어다니기로 마음을 먹더라도 나는 곧 다시 눕고 싶어질 것이다. 그러나 누우면 허리가 아프다. 게다가 손을 아무리 씻어도 손바닥은 이유 없이 따갑다. 이불을 덮으면 덥고, 그러지 않으면 춥다. 이런 문제들은 누가 누구를 싫어한다든가 따위의 문제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것이다.

더군다나 요즘은 나쁜 꿈을 자주 꾼다. 한 번은 고등학교 3학년으로 되돌아가기도 했다. 하지만 꿈 속의 친구들은 그때 친구들이 아니었다. 학교는 우리들이 모든 종류의 팔찌를 착용하는 것을 금지했다. 우리는 곧 운동장에서 축구를 했는데 나는 그때만큼 빠르게 뛸 수가 없었다. 이것 말고도 수많은 악몽을 꾸었다. 그것들이 전부 기억나지 않는다는 점이 더 나쁘게 여겨진다. 오늘도 나쁜 꿈을 꿀까 걱정하며 편히 잠들지 못하는 것이 일상적인 재앙이 되었다.

저번에는 누군가가 몰상식한 일을 내게 저질렀고, 스스로 생각하기에 나는 거기에 예상 외로 매끄럽게 대처한 편이다. 그러나 기분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하여간 나는 내가 책임져야 할 것들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을 대개 얼마쯤 뒤늦게 깨닫는다. 그때 앞장서는 것은 공포다. 하지만 막상 닥치면 별 것도 아니거나 해 볼 만한 것이라는 걸 나도 대강은 짐작할 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