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제257호에 쓴 칼럼이다.
문제는 해결되어야 한다. 그러나 당연히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모두에게 이익으로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 정도로 단순한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문제가 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문제 되는 일이 아닐지도 모르고 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또다른 문제를 낳을 수도 있다. 그러나 끊임없이 생겨나는 문제들을 계속해서 해결해 나가는 과정의 집합을 삶이라고 기꺼이 부를 만하며, 어떤 문제에 대한 완벽한 해결책은 없다는 점을 먼저 언급해 두고 싶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첫 번째 단계는 여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세상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누군가 거기에 대해 말하기 시작해야 하고, 그 말을 듣고 수긍하거나 반론을 던질 누군가가 필요하다. 이 토론에서 이것이 문제인지 아닌지가 판가름 날 것이고, 이것이 문제라는 점이 분명해지면 사람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변화에 착수할 것이다. 그러니까 이 토론이야말로 모든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며,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묘사하기 위해 첫 번째로 언급해야 하는 것이다. 토론이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지만, 토론 없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토론이 주로 이루어지는 공간을 공론장이라고 이름 붙여도 괜찮을 것이다. 특히 비교적 많은 사람으로 구성된 사회에서는, 공론장 없이 의미 있는 토론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니 공론장의 존재는 토론만큼이나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거꾸로 어떤 사회에 제대로 된 공론장이 없고 토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곳에 있는 문제들은 쉽게 발견되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가 지내는 이곳은 어떨까?
지난 14일 새벽 12시 30분부터 두 시간여 동안 제이티비씨(JTBC)에서 방영된 <JTBC 밤샘토론>의 주제는 ‘국정화 블랙홀에 빠진 대한민국’이었다. 한국 공중파와 종합편성 방송사들 중에서는 그나마 JTBC가 가장 진보적인 성향의 매체라는 점을 상기하는 것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생방송으로 진행된 이날 토론에는 사회자가 한 명 있고 네 명의 논객이 청팀과 홍팀으로 나뉘어졌다. 청팀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이신철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교수, 홍팀은 조전혁 전 새누리당 의원과 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로 각각 구성됐다. 전 정치인과 역사 전문가로 어느 정도 짝은 맞춘 셈이다. 이 논객들 배경을 살펴 보는 것이 재밌는데, 유시민 전 장관이야 익히 알려져 있듯 진보 진영에서 활동했던 정치인이고, 이신철 교수는 현대사를 주로 연구하는 역사학자이면서 역사교과서에 대한 토론회에 자주 나타나는 논객이기도 하다. 홍팀의 조전혁 전 의원은 18대 국회에서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이었고, 뉴라이트 계열 교육 운동과 전교조 반대 운동에 앞장선 인물이다. 권희영 교수는 ‘그’ 교학사 역사 교과서를 대표집필한 사람이다.
이만큼 알고 나서도 이 토론이 어떤 양상으로 진행될지에 대해 여러 가지 상상을 하기란 힘들었다. 그럼에도 궁금한 점이 몇 가지 있었기 때문에 끝날 때까지 지켜보았는데, 그 궁금한 점이란 △홍팀 논객은 반대 의견을 가진 상대를 바로 앞에 두고 대화해야 하는 곳에서 어떤 자세를 보일 것인가 △홍팀이 토론에 임하는 자세에 청팀 논객이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이날 유 전 장관과 이 교수는 가능한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태도를 유지하려 애쓰는 듯했다. 반면 조 전 의원과 권 교수에게서 비슷한 모습을 찾아보긴 힘들었다. 토론은 가령 이런 식으로 진행됐다:
권 교수는 토론 첫머리에서 지난 10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발언한 데에 대해 “일찍이 일제시대에 박은식 선생께서는 국혼이라는 말을 사용했고, 마찬가지로 위당 정인보 선생께서도 ‘조선의 얼’이라는 말씀을 하시며 얼, 즉, 혼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 말씀하셨다”며 “바로 그 중요성을 대통령께서 충분히 알고 계시기 때문에 그와 같은 발언을 하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비호했다. 이어서는 “오늘 토론의 제목이 ‘국정화 블랙홀’인 것은 잘못된 은유가 아니냐. 블랙홀은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가서 부서지는 것을 뜻하는 것인데 이번 국정화 문제를 계기로 해서 벌어진 다양한 논전들은 블랙홀이 아니라 다이아몬드 원석이 다듬어지는 과정이다”라고 주장하며 “이것은 가치투쟁”이라고 선언했다.
이에 이신철 교수가 “박은식·신채호 선생이 이야기했던 민족혼, 국혼이라는 것하고 지금 대통령께서 이야기하고 있는 국민 혼이라는 것이 과연 같은 것인가”라며 반론을 시작했다. 그는 “국정화를 지지하는 분들은 역사학계의 90%를 좌파라고 매도하고 있”는데 대해 실상 우리 역사학계는 민족주의적인 성향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학계 전반에 대해 좌파, 종북이란 말까지 쓰는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생각된다”고 비판했다. 권희영 교수의 발언에 대응하는 피드백을 제공한 것이다. 이 교수는 또 ‘박근혜의 입’이라고 불리어 온 새누리당 이정현 최고위원이 지난 달 26일 “올바른 교과서를 만들자는 데 반대하는 국민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다”라고 발언한 사실을 언급하며 “대통령의 이야기[와 종합하면] 국정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다 국민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국민 혼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이라는 논리를 전개했다.
조전혁 전 의원은 곧바로 이어지는 반론 기회에서 “사실 저도 국정화를 반대합니다”라고 말을 떼더니 “국정화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을 정도로 막다른 골목까지 와 있다는 것이 이 문제의 슬픈 현실”이라며, 잠깐 전에 이 교수가 ‘매도’라며 논파한 바 있는 논리를 같은 뜻의 다른 문장으로 다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유 전 장관을 향해 “통합진보당 들어가서 소위 주사파로부터 공격을 받으며 고생 좀 하시지 않으셨느냐”며 “지금 교과서 문제가 마치 그런 지경에 처해 있다”고 평한 것이다. 조 전 의원은 이어 “역사학계가 일종의 강력한 카르텔을 만들어서 독점 구조 하에서 거의 똑같은 역사관을 가지고 있는, 민족주의에 너무 깊숙히 들어가 ‘민족을 위해서라면 어떤 식의 통일도 좋다’ 이런 식의 의심까지 들게 하는 교과서 편찬 경향을 가져왔다”며 “일곱 종의 교과서를 보면 한 가지 교과서나 다름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국정화를 선택한 것이다. 대통령으로서 고뇌에 찬 선택을 내린 것”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반박에 대해 재반박을 한 것이 아니라 반박 당한 논지를 근거 삼아 새로운 주장을 펼친 것이다.
홍팀 논객들의 말하기는 토론 내내 이런 방식이었다. 그 방식이란 청팀의 주장이나 반박에 대해서 마치 아무 것도 듣지 못한 사람처럼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상대방의 말을 들을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들 같았다. 대신 기존의 이미 논파 당한 주장들을 다른 방식으로 반복하고, 지속적으로 주어진 논제와는 별로 상관이 없는 다른 틀을 내세우곤 했다. 청팀 논객들은 주로 홍팀 쪽 주장을 하나씩 돌파하면서 자신들의 생각을 펼쳐나가려는 방법을 택했는데, 무언가 반박을 해도 재반박이 없으니 전진할 도리가 없고 반대편에서 들고 나오는 기괴한 가치판단의 기준들을 해체하는 데에도 입이 모자라니 그저 실없는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끝 부분에 가서는 사회자가 제시한 논제와는 달리 ‘무엇이 좌고 무엇이 우인가’ ‘좌우 구분의 기준을 어디에 놓아야 하는가’ 정도 되는 주제라고 보아야 마땅한 토론이 이어졌고 방송은 방청객 질문을 받으며 형식적으로 마무리됐다. 마지막에 이신철 교수가 ‘오늘의 올빼미 논객’으로 선정돼 올빼미 쿠션을 타 갔고 다음 날 유시민 전 장관의 몇몇 발언들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기는 했지만 청팀에게 이번 토론은 사실상 실패에 가까웠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JTBC 밤샘토론>이 끝난 뒤 자고 일어나서 이날 저녁 열린 민중총궐기 집회에 나가 보려고 광화문 광장으로 향했다. 내가 시내로 향하는 지하철을 탔을 땐 이미 해가 진 뒤였는데 종각역이나 광화문역은 지나다닐 수가 없는 상태라는 소식을 듣고 종로3가역에서 내려 서쪽으로 걸어가기로 했다. 지상으로 올라왔더니 십만여 명이 참여하는 집회가 열리는 도심 부근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지나치게 평소와 다른 점이 없는 모습이어서 조금 놀랐다. 종로1가부터 도로에 차가 다니지 않았고 집회 참가자들을 목격했다. 종각역 즈음 가서 기침이 난다 싶더라니 차벽 앞에서 최루액을 맞아가며 시위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나는 광화문 광장에 들어가 보고 싶어서 차벽을 따라 안국 쪽으로 갔다가, 인사동을 거쳐 다시 종각으로 왔다가 청계천을 따라 코리아나호텔이 있는 광장 남쪽에 왔다. 그러나 광장에 들어가 있다는 친구들은 연락이 잘 되질 않았고 광장 남쪽에서도 광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만한 틈새는 보이지 않아, 당분간은 하염없이 눈에 보이는 것들을 관찰하는 수밖에 없었다.
폴리스라인과 그위에 올라서서 채증을 하고 있는 경찰들 너머로 빌딩 전광판에 여느 때처럼 광고가 재생되고 있는 풍경은, 확실히 이상한 것이었다. 나는 아직도 그때 느꼈던 감정이 정확히 어떤 것이었는지 묘사하지 못하겠다. 광장에 있던 친구들 몇이 어떻게인지 바깥으로 빠져 나와서 합류할 수 있었는데, 그 뒤로 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폭력 경찰 물러가라’ 따위의 구호를 연신 외치며 최루액을 담뿍 맞다가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와 몸을 씻었다. 그때 우리가 외쳤던 구호들은 ‘국정화 교과서 반대한다’ ‘노동 개악 분쇄하자’ 등을 비롯해 대부분의 현안에 대한 것이었다.
막상 기억에 남는 것은 언젠가 연단에 선 사람이 “우리는 저들(청와대에 있는 분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걸 들었던 순간이다. 하여간 여기서 우리가 아무리 집회를 해도 우리가 외치는 말들이 그 말들을 좀 들었으면 하는 자들에게 제대로 전달이 안 되고 있다는 점은 그때쯤에는 분명히 알아챘던 것 같다.
집회 현장은 (최루액 때문에) 뜨거웠지만 폴리스라인 외곽에서 세네 구역만 벗어나면 집회가 열리고 있는지 알기 힘들었고, 무슨 내용에 관해 어떤 내용을 주장하고 있는 것인지는 더욱 어려웠다. 사실 정부가 집회에 이런 식으로 대응하게 된 지는 꽤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 일간지들은 온통 강경 진압이었냐 폭력 시위였냐에 대한 보도로만 가득 찼고, 우리가 무엇을 위해 거기에 모였던 것인지는 지금쯤이면 많이들 잊혀졌을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저쪽에서는 우리 쪽 사람들 말을 귀담아 듣지 않기 위한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다. 우린 청팀이고 상대는 홍팀인 셈이다.
상대방이 이렇게 모든 힘을 다해 내 말을 안 듣는데 정상적인 방법으로 무슨 문제가 해결될 리가 없다. 더욱 힘 빠지게 하는 점은 여기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이 이런 태도를 취하는 일은 시민으로서 너무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수치를 모르는 자들과 어떻게 대화할 것인가? 이것은 지독하게 앞이 깜깜한 질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항상 희망이라는 단어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단지 구호로 외치기에는 너무 엉성해 보이는 이 단어의 빈 부분을 채우기 위해 우선 주변을 둘러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예컨대 저기에 대나무숲이라는 곳이 있다. 나는 처음에 이 공간을 알게 되었을 때는 조금 비웃기까지 하며 지나쳤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대나무숲에서는 얼마 전부터 페미니즘을 놓고 이전에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정도의 열띤 토론이 벌어져 왔다. 물론 이 토론이 전부 잘 정제된 형태였다고 말할 수는 없고, 관리자를 비롯한 몇몇 사람이 보여주는 존경 받아 마땅한 노력에 어느 정도 의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며, 동시에 누군가가 대나무숲에서 말하거나 들으면서 분노하거나 상처 입는 경험들도 쌓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하는 말을 다른 사람들이 듣고, 거기에 대한 반응들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한 것은 확실히 기뻐할 만한 일이다. 나는 이것이 어떤 긴 토론의 시작을 알리는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대나무숲이 어떤 공론장의 역할을 한다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당연히 대나무숲이 우리가 만들 수 있는 최선의 공론장은 아니겠지만, 여기에는 최소한 희망이 있다. 우리 학교라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사회가 더 건강한 곳이 될 수 있다는 희망.